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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 열풍 문제 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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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3면

최근 두바이 공항을 들렀을 때 많은 여행객들이 금화를 사는 모습을 보고 적잖이 놀랐다. 그들이 금화에 달려든 건 두바이 금융위기 때문이 아니었다. 그저 금값이 지금보다 더 오르기 전에 사두고 보자는 심리였다. 금 열풍에 힘입어 2005년 온스(31.1g)당 400달러(약 47만원) 하던 금값이 최근에는 1100달러 안팎에 거래된다. 1㎏짜리 금괴와 금 펀드·금 선물·금광업체 주식 등도 인기다. 개인뿐 아니라 기관 투자가, 국부펀드 등도 열풍에 가세했다. 최근 인도 정부는 국제통화기금(IMF)이 보유 중이던 200t의 금을 사들이기도 했다.

이들이 금을 사들인 건 향후 물가 상승이나 주요 통화의 가치 하락에 대비하려는 차원이다. 두 가지 모두 경계해야 마땅한 리스크들이다. 비록 현재 미국·유럽·일본 등 주요국의 물가상승률이 낮긴 해도 개인과 기관 투자가들로선 걱정하지 않을 수 없다. 저금리와 은행 유동성 증가로 경제가 회복되기 시작하면 얼마든지 인플레이션이 올 수 있기 때문이다. 달러 가치 하락도 달러를 보유한 해외 투자가들에게는 우려할 만하다. 이미 달러는 지난해 유로화 대비 10% 이상 가치가 하락했다.

그러나 금이 이들 리스크에 대비할 수 있는 적당한 투자 수단인지는 의문이다. 먼저 금이 물가 상승 위험에 대비할 수 있는지부터 살펴보자. 1980년 금의 온스당 가격은 400달러였다. 10년 뒤 미 소비자 물가지수는 60% 이상 올랐지만 금값은 10년 전과 같은 수준이었다. 2000년 미 소비자 물가는 80년보다 두 배 이상 올랐지만 금값은 오히려 300달러 수준으로 하락했다. 2008년 금값이 온스당 800달러로 올랐어도 80년 이후 치솟은 물가를 감안하면 값은 떨어진 셈이다. 물가 상승에 대비하려면 인플레이션을 상쇄할 수 있는 미 국채(TIPS)에 투자하는 게 효과적이다. 이 국채는 1% 이상의 명목 이자와 함께 물가상승률만큼 이자를 더 얹어준다. 물가가 떨어질 경우 정해진 원리금을 지급해 물가 하락 위험에도 대비할 수 있다.

금은 환율 변동에 대한 대처 수단으로도 부적절하다. 80년에 1달러는 200엔이었다. 25년 뒤 1달러의 가치는 110엔으로 하락했다. 그러나 80년과 2005년 모두 금값은 온스당 400달러였으므로 금을 보유함으로써 달러 가치 하락에 따른 손실을 만회하지 못했다. 엔화로 환산하면 금값은 절반 가까이 추락한 셈이다. 환율 변동 위험에 대비하려면 금보다는 환율 선물에 투자하는 게 좋을 것이다.

금이 물가나 환율 변동에 대비하는 데 적합하지 않다고 해서 아예 투자 수단으로 고려하지 말라는 건 아니다. 어찌됐든 금의 달러화 표시 가치는 2005년 이후 세 배로 뛰었다. 또 금은 주식·채권·부동산과 마찬가지로 분산 투자하기 좋은 유동 자산이다. 단 금은 투자 위험과 변동성이 큰 투자 수단이다. 주식·채권·부동산과 달리 금의 가치는 잠재 수익에 기반하는 게 아니라 순전히 투기적 투자에 좌우되기 때문이다. 앞으로 금이 온스당 500달러로 떨어질지, 2000달러로 치솟을지 아무도 모른다. 금에 투자할 땐 자기 책임의 원칙을 명심해야 한다.

마틴 펠트스타인 하버드대 교수·경제학

정리=정재홍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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