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온천 87% 수돗물 타거나 데워 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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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0면

일본에서 온천을 갖춘 숙박시설의 90%가량은 온천에 수돗물을 섞거나, 한번 써서 더러워진 물을 정수해 다시 쓰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그중 80%는 이 같은 사실을 제대로 표기 하지 않고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이 같은 사실은 일본 국토교통성이 전국적으로 실시한 '온천실태조사'에서 밝혀졌다. 조사는 일본 유명 온천지의 여관.호텔 등 숙박시설에서 입욕제를 타거나 수돗물을 데워 온천수로 속이는 등 '가짜 온천'이 잇따라 발각된 것을 계기로 시행됐다.

대상은 최근 전국 7만곳의 숙박시설 중 국제관광호텔정비법에 따라 외국인 관광객을 수용할 수 있는 호텔과 여관 3124곳. 이들에게 "온천을 사용하고 있는가" "원천(源泉) 물을 사용하고 있는가" 등을 물었다.

그 결과 온천을 사용하고 있다고 답한 시설 1310곳 중 1146곳(87%)은 "온도 조절을 위해 물을 데우거나 수돗물을 섞어 사용하고 있다" "한번 사용한 온천탕의 물을 걸러낸 뒤 다시 쓰기도 한다"고 답했다. 온천시설 10곳 중 1곳만이 원천에 손을 대지 않은 '진짜 온천'으로 판정된 셈이다.

또 온도 조절 등을 위해 수돗물을 섞는 등의 조치를 하고 있는 시설 중 79%인 913곳은 홈페이지나 안내 유인물에 이런 사실을 정확하게 표기하지 않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현재 일본의 온천법에 따르면 온천은 "용출(湧出)온수나 수증기의 온도가 섭씨 25도 이상이거나 일정한 성분을 포함한다"고만 정의하고 있다. 물을 섞어도 되는지, 섞으면 얼마 이하로 섞어야 하는지에 대한 내용이 전혀 없다. 이번 조사에서도 해당 숙박시설의 이름은 "현행법에 위반이 되지 않는다"는 이유로 공개되지 않았다.

또 절반가량의 온천 숙박시설은 "앞으로도 온천에 물을 타거나 데웠다는 사실을 공개할 필요성을 느끼지 않는다"고 답했다.

국토교통성은 이번 조사 결과를 토대로 환경청과 논의해 온천 표시 기준을 새롭게 제정할 방침이다. 아시아 각국의 관광객 상당수가 "온천을 즐기러 일본에 간다"고 말하고 있는 만큼 부정적 이미지는 관광수입에 큰 타격을 줄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또 나가노(長野).시즈오카(靜岡)현 등 온천시설이 많이 몰려 있는 지자체들도 신뢰회복에 나서고 있다. 온천의 성분 등에 대한 내역을 모든 온천 숙박시설에 구체적으로 밝히는 것을 의무화하는 등의 조치를 취하고 있다.

도쿄=김현기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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