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재찬 전문기자의 통계로 본 경제] 성장해야 분배도 개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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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4면

한국 경제가'마(魔)의 1만달러'장벽에 갇힌 지 벌써 9년째다. 1995년 1인당 국민소득(GNI)이 1만1432달러로 1만달러 고지를 넘어섰고, 이듬해 선진국클럽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 가입했다.

그러나 외환위기로 98년 7355달러까지 주저앉았다가 2000년에 다시 1만달러에 턱걸이한 뒤 계속 1만~1만2000달러를 맴돌고 있다.

굳이 국민소득 통계를 들먹이지 않더라도 지금 우리가 분배보다 성장에 신경 써야 하는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다. 한국은 세계에서 가장 빠른 속도로 늙어가는(고령화) 국가다. 따라서 조금이라도 더 젊을 적에 나눠먹을 빵을 키워야 한다. 어디 그뿐인가. 통일에 대비한 재원도 마련하고, 외환위기 이후 급증한 국가채무 부담도 줄여야 한다.

우리가 그동안 성장을 통해 분배를 개선해왔음은 통계로 입증된다. 그래프에서 보듯 소득분배의 불균형 정도를 나타내는 지니계수가 고(高)성장기에는 낮아지는 현상이 뚜렷하다. 0에서 1까지의 값을 갖는 지니계수는 수치가 클수록 불균형이 심각하다는 뜻인데 90~97년 사이 평균 0.286에서 1998~2003년에는 0.315로 높아졌다.

특히 외환위기 이후 중산층 비중이 축소되는 가운데 상류층과 중하위 및 빈곤층은 커지는 소득의 양극화 현상이 두드러지며 빈부격차가 벌어지고 있다. 실업자가 늘어나면서 임금을 기반으로 한 중산층에 금이 갔기 때문이다.

그런데 정부 수립 이후 처음 공표한 중장기(2004~2008년) 재정운용 계획을 보면 정부가 내세운 '분배와 성장의 선순환 구조 정착'과는 거리가 있다.

노동.복지 분야의 지출이 총지출 증가율(6.3%)의 두 배에 가까운 12.2%다. 그 결과 미래 성장동력을 이끌 교육.정보화.연구개발(R&D) 관련 예산이 복지.노동 분야 예산에 못 미친다. 성장보다 분배에 무게중심을 둔 것이다.

이렇게 재정을 운용해 정부가 목표로 잡은 향후 5년간 연평균 5% 성장과 2010년께 국민소득 2만달러 달성이 가능할까? 요즘 같은 우울증과 무기력증이 이어졌다가는 선진국 진입은커녕 2류 국가로 전락할 수 있다. 성장 엔진을 살리자. 그래야 일자리도 나오고 2만달러를 향해 뛸 수 있다.

양재찬 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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