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물의 성생활 그린 '동물의 사생활' 출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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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3면

"올빼미 등 동물들이 생식본능에 따라서만 교미를 한다는 것은 사실과 전혀 다른 인간들의 왜곡된 통념에 불과하다" 고 지적한 것은 EBS의 박수용PD다.

한해의 절반 이상을 야외에서 보내는 자연다큐멘터리 분야 일급 PD인 그의 증언에 따르면, 놀랍게도 동물들도 '즐기는 섹스' 를 한다는 것이다.

'과연 그럴까?' 싶었더니 멋진 신간 '동물의 사생활' 의 저자는 한걸음 더 나간다. 결코 무시못할 진실들을 노골적으로 털어놓는다.

"동물들이 사생활을 영위하는 방식에 관한 많은 관찰은 성적인 부정(不貞)과 배신이 예외적이라기보다는 정상적 행위에 가깝다는 사실을 보여줬다. 동물들이 짝짓기를 할 때 대부분의 그들은 '불만족스럽지만 차선의 상대를 받아들이고 있다' 는 시늉을 한다. 암수는 서로 현재의 짝보다 호감이 가는 상대들의 유혹을 받아들일 만반의 준비를 하고 있다. 그들의 섹스는 항상 긴장과 불신으로 가득 찬 '평생의 내전' 이다."

저자는 이런 관찰을 토대로 '오버 아닌 오버' 까지 한다. 인간들의 사생활에 관한 기존 통념을 바꾸라는 간섭이다.

"많은 사람들이 섹스를 오해하고 있다. 사람들이 생각하는 이상적인 섹스는 사랑의 낭만적인 결과라는 것이다. 그러나 섹스는 결코 나눔과 보살핌을 장려하지 않는다. 이 책은 섹스에 관한 오해를 바로잡기 위한 것이다."

이 대목은 말썽의 소지가 있다. 자칫 '동물학적 환원주의가 아니냐. 어떻게 동물들을 재는 잣대로 인간의 내면까지를 재려 하는가' 하는 지적을 받을 만하다.

자, 무엇이 진실일까. 우선 책의 저자는 이 분야의 일급이다. '털 없는 원숭이' 의 저자로 국내 팬들에게 낯익은 데즈먼드 모리스와 함께 런던동물학회 멤버이고, 1965년 이후 영국 BBC의 PD와 프리랜서 등으로 일해 왔다.

게다가 출판사와 번역자 모두가 신뢰할 만하다. 이를테면 번역자 김동광은 '인간을 위한 과학' 을 모토로 한 자연과학분야 출판연구 모임인 '과학세대' 의 대표다.

따라서 진지하게 이 신간의 메시지를 들을 수밖에 없는데, 한마디로 '무자비한 진실' 이다.핵심은 이렇다.

'수컷과 암컷의 모든 성적 야바위란 자신의 유전자가 가능한 한 더 많이 살아남도록 하기 위한 노력' 이라는 것이다.

동물을 포함한 개별적인 생물학적 종(種)들은 이를 위한 전략을 진화시켜 왔다는 점을 밝히는 데 이 책은 주력한다. 놀랍도록 생생한 사진도 잘 곁들여졌다. 기본적으로 흥미위주가 아니고 진지하다.

◇ 사족〓이 책에 질겁할 사람들은 '동물학적 환원주의' 에 반대하는 철학자들일 것이다.

당연히 동양의 주자(朱子)도 포함된다.

동양 근세의 철학적 지평을 만든 그는 한마디로 자연세계와 인간세계 사이의 물샐틈없는 연결을 목표로 장대한 형이상학을 만들었던 사람이다. 성리학이 그것이다.

그러나 성리학적 틀은 인간에 대한 프리미엄을 전제로 한 것이 분명하다. 신간 '동물의 사생활' 이 사정없이 파고드는 대목은 바로 이 지점이다. 자연은 물론 동물들에 비해 인간이 과대포장됐음을 밝히려 하기 때문이다.

조우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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