흘려쓴 처방전 사고 우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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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2면

'VAL, F-Q' .

충남 천안의 모 의원이 발행한 처방전에 명기된 약 이름이다. 의원 내에서 사용하던 약어를 원외처방전에 사용했다.

부산 K의원의 처방전에는 일곱가지 약이 영어로 기재돼 있으나 흘려 쓰는 바람에 알아보기 쉽지 않다.

의약분업이 시행된 후 의사가 약 이름을 정확하게 쓰지 않은 처방전이 속출하면서 약화(藥禍)사고가 발생할 우려가 높아지고 있다.

대한약사회 신현창(申鉉昌)사무총장은 "컴퓨터를 사용하지 않고 수기(手記)로 작성한 처방전 중 휘갈겨 쓰거나 약어로 쓴 처방전 때문에 일선 약국들이 골머리를 앓고 있다" 고 말했다.

이같은 처방전에 대해 약사들이 의사에게 확인하면 별 문제가 없으나 그렇지 않을 경우 약화사고로 이어질 가능성이 있다.

미국에서도 처방전 흘려 쓰기 때문에 연간 2만~3만건의 의료분쟁이 벌어진다. 일본이나 영국 등 다른 선진국도 마찬가지다.

또 소아용 약의 1회 투약량을 소수점 단위의 소량으로 처방할 수밖에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라 정확한 양을 조제했는지를 두고 의.약간의 분쟁 가능성도 제기되고 있다. '플라콩(소아용 콧물감기약) 0.333정' 등이 그 예다.

제주도 개업의 尹모씨는 "어린이에게는 1회에 극소량을 투약하는 경우가 많으며, 양이 조금이라도 넘을 경우 문제가 된다" 면서 "따라서 소수점 두세자리까지 내려가는 처방을 할 수밖에 없으나 약국에서 이를 소화할지는 의문" 이라고 말했다.

경기도의 李모 약사는 "전자저울로 정확히 달아 조제하고 있으나 시간이 많이 걸리기 때문에 환자가 몰릴 경우 본의아니게 실수를 하지 않을까 걱정된다" 고 말했다.

최재천(崔載千)변호사는 "흘려쓴 처방전 때문에 약화사고가 발생하면 의사와 약사의 공동 책임으로 봐야 한다" 면서 "또박또박 기재했는지 여부를 환자가 확인하고, 의사는 손으로 쓰기보다는 컴퓨터 처방을 하도록 해야 할 것" 이라고 말했다.

주사제 포장이 다양하지 못한 점도 문제다. 소아과 의사 朴모씨는 "환자가 주사제 한병을 사오면 애들에게 반병 이하만 주사하고 나머지는 버려야 하기 때문에 환자 부담을 가중시킨다" 고 말했다.

보건사회연구원 조재국(曺在國)보건산업팀장은 "제약회사들이 수요에 맞게 경구약이나 주사제를 소량으로 다양하게 만들어야 한다" 고 강조했다.

신성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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