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김종수의 세상 읽기

‘일자리 만들기’의 진정성은 실적이 말한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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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새해 각국 정상들의 신년사를 보면 한 가지 공통점을 발견할 수 있다. 나라마다 사정이 다름에도 불구하고 각국 지도자들은 마치 짜맞춘 듯이 한결같이 “올해를 경제가 회복되는 해로 만들겠다”고 강조한 것이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가 터진 이후 1년이 넘도록 부진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는 세계경제 상황을 감안해 보면 각국의 지도자들이 한목소리로 ‘경제 살리기’를 올해의 가장 큰 과제로 삼은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이명박 대통령도 ‘일로영일(一勞永逸)’을 신년 화두로 삼아 올 한 해 동안 ‘경제 살리기’에 매진하겠다고 다짐했다. 그러나 다 같이 ‘경제 살리기’를 강조했어도 이 대통령은 다른 나라의 지도자들에 비해 한결 느긋한 입장이었을 법하다. 한국 경제는 지난해 이미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가운데 가장 빠른 회복세를 보인 데다, 올해는 대부분의 예측기관이 5% 이상의 성장은 무난히 이룰 수 있을 것으로 전망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예측대로만 경제가 굴러가 준다면 올해를 ‘경제 살리기’ 원년으로 삼겠다는 이 대통령의 다짐은 떼놓은 당상이 아닐 수 없다. 욱일승천(旭日昇天)하듯 고도성장을 구가하는 중국만은 못하지만 5% 정도의 성장률이면 웬만한 선진국의 코를 납작하게 만들 만한 놀라운 수치임에 틀림없다.

그러나 이 성장률 전망치가 실제로 달성되면 경제가 살아났다고 할 수 있을까. 불행히도 그렇지 않다는 데 고민이 있다. 우선 올해 경제가 5% 이상 성장한다 해도 국민이 경제가 회복됐다는 걸 피부로 실감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바로 기저(基底)효과 때문이다. 한국 경제는 글로벌 금융위기가 불거진 2008년 4분기에 성장률이 마이너스 3.4%를 기록한 이후 지난해 1분기(-4.2%)와 2분기(-2.2%)까지 세 분기 연속 마이너스 성장을 면치 못했다. 그러다가 지난해 3분기에 0.9%의 플러스 성장으로 돌아선 이후 4분기(+6.3%)부터 본격적인 회복 국면으로 들어섰다. 지난해 연간으론 겨우 0.2% 성장한 데 그쳤다. 사실상 지난 한 해 동안 경제가 전년에 비해 조금도 나아진 게 없었던 셈이다. 얼핏 보기에 5% 성장률이면 꽤 괜찮은 수치로 보이지만 비교 대상인 전년의 실적이 워낙 보잘것없었기에 상대적으로 커 보이는 착시현상에 불과하단 얘기다.

더 심각한 것은 올해 성장 패턴이 상고하저(上高下低)의 형태를 띨 것이란 점이다. 한국개발연구원(KDI)은 한국 경제가 올 상반기에 6.9% 성장한 뒤 하반기에는 4.3% 성장에 그칠 것으로 전망했다. 이는 기저효과에 의한 성장률 착시현상을 보다 분명하게 보여준다. 마이너스 성장을 기록했던 지난해 상반기와 비교한 올 상반기 성장률은 높게 나타나고, 플러스 성장으로 돌아선 지난해 하반기와 비교한 올 하반기 성장률은 낮게 나타난 것이다. 결국 올해 5% 이상 성장한다고 해봐야 위기 이후 2년을 통틀어 보면 연평균 2% 남짓의 저성장 국면이 이어지고 있을 뿐이다.

이런 성장률로는 경제회복을 실감하기도 어려울뿐더러 매년 사회에 쏟아져 나오는 40만 명의 젊은이들에게 번듯한 일자리를 마련해 주기엔 턱없이 부족하다. 지난해 11월 말 현재 우리나라의 실업률은 3.3%로 전년 동기에 비해 0.2%포인트 늘어나긴 했지만 미국(9.4%)은 물론 일본(5.2%)에 비해서도 양호한 편이다. 그러나 취업자 수는 2380만6000명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1만 명이 줄었고, 고용률(취업인구비율)은 59.1%로 전년 동기에 비해 0.8% 하락했다. 같은 기간 실업자 수는 81만9000명으로 6만9000명(9.3%) 늘었다. 여기다 취업을 포기한 비경제활동인구가 45만1000명(3%) 증가한 것을 감안하면 지난 1년 사이 50만 명 이상이 일자리를 잃었거나 포기한 셈이다. 일자리가 늘어나지 않으면 경제회복을 실감하기가 더욱 어렵다. 당장 일자리를 구할 수 없는 판에 나라 전체의 성장률이 높아진들 그게 다 무슨 소용이란 말인가.

선진국치고 경제성장률 숫자를 정책 목표로 삼는 나라는 없다. 각국 지도자들은 그 대신 일자리를 몇 개 만들겠다는 약속은 공공연히 하고 그 결과를 자신의 업적으로 자랑스럽게 내세운다. 일자리야말로 지도자가 이룬 경제적 성취의 구체적인 증거인 것이다. 이 대통령이 ‘일자리 만들기’를 올해 최우선 국정 과제로 삼은 이유를 이해할 만하다.

문제는 경기가 살아난다고 해서 일자리가 비례적으로 늘어나지 않는다는 점이다. 고용의 원천인 기업의 투자가 경기회복의 속도에 비해 한 박자 늦는 데다, 투자가 일어나도 일자리가 예전만큼 늘지 않기 때문이다. 이른바 ‘고용 없는 성장’이 갈수록 심화되고 있는 것이다. 실제로 지난해 경제회복을 주도한 것은 수출 대기업들이었으나 고용은 이들의 실적만큼 늘지 않았다. 오히려 지난해 10월까지 민간 부문에서 줄어든 일자리는 무려 32만3000개에 이르는 것으로 집계됐다. 공공 부문에서 만든 일자리 33만2000개가 없었다면 실업대란이 일어났을 것이다.

일자리를 늘릴 수 있는 해법은 이미 나와 있다. 국민 세금을 쥐어짜서 만드는 공공 부문 일자리는 임시방편일 뿐이다. 수출과 제조업의 투자를 독려하는 것도 필요하지만 이런 분야에서 고용을 획기적으로 늘리기는 갈수록 어려워지고 있다. 결국은 고용 창출효과가 큰 서비스업을 키우는 도리밖에 없다. 서비스업의 취업유발계수(10억원당 취업자 수, 2005년 기준)는 18.4명으로 제조업(10.1명)의 두 배에 가깝다. 서비스업이야말로 일자리 창출의 보고인 셈이다. 당장 규제만 확 풀어도 의료·법률·교육·관광·유통·미디어 산업에서 우리의 젊은이들에게 줄 수 있는 수십만 개의 고급스러운 서비스 일자리를 만들어 낼 수 있다. 이 대통령과 정부가 진정으로 일자리 만들기를 국정의 최우선 과제로 생각한다면 더 이상 이익집단의 눈치 볼 것 없이 과감하게 서비스업 규제 완화에 나서는 게 정답이다. 말로만 일자리 만들기를 외친다고 일자리가 저절로 생기지는 않는다. 그 진정성은 일자리를 만든 실적이 말해줄 것이다.

김종수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