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참여활동에 팔 걷은 청소년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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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리는 한국 다문화가정을 상징하는 주인공이죠. 우즈베키스탄 어머니와 한국인 아버지 사이에서 자신의 정체성을 고민하는 어린 소녀에요.”유엔산하기관 공동주최 ‘세계다문화영상공모전’에서 13~17세 부문 대상을 수상한 김영민(17대원외고2)군. 김군은 “이제 시작일 뿐”이라며“아직은 배울 것이 더 많은 것 같다”고 말했다. 최근 김군처럼 인권환경등 다양한 사회문제에 관심을 갖고 참여하는 청소년들이 많다. 작은 활동이지만 당당히 자신의 목소리를 내고 있는 그들을 만나봤다.

한국의 사례, 세계다문화영상전서 주목 받아

김군이 제작한 ‘나는 누구일까?(Who am I?)’라는 제목의 5분짜리 애니메이션은 우즈베키스탄 어머니를 둔 8살 ‘유리’가 가정과 학교에서 겪는 정체성의 혼란을 그린 작품이다. 작품속에는 김치를 담글 줄 몰라 혼나는 어머니의 모습, 학교에서 놀림 당하는 유리의 모습 등 다문화가정에서 겪는 여러 일화들이 그려진다.

김군은 “YWCA에서 진행했던 캠페인이 계기가 돼 다문화가정에 관심을 가지게 됐다”며“취업뿐만 아니라 졸업에서도 차별을 받는다는 사실에 큰 충격을 받았었다”고 제작배경을 설명했다. 가장 오랜 시간을 들인 것은 시나리오 작업이었다. 한국적 소재를 찾기 위해 사전조사에 가장 큰 시간을 들였다. 직접 다문화가정을 찾아가보고 UN 권고문 등 다문화가정에 대한 자료를 샅샅이 찾아봤단다. 김군은 “학교 공부만으로는 이런 내용을 배우기 힘들었을 것”이라며 “다른 문화권에 대한 이해가 정말 중요하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고 한다. “교과서나 학교에선 아직 이 문제를 중요하게 다루지 않아요. 그런데 2020년이면 전체 인구의 5%가 외국인이 될 정도로 한국은 빠르게 변하고 있죠. 그땐 다른 문화권을 이해하고 소통할 수 있는 능력이 정말 중요할 거에요.”

김군이 본격적으로 인권문제에 관심을 두게 된 것은 올해 국가인권위원회에서 모집한 청소년 교과서 인권모니터단에 참가하면서부터다. 교과서의 그림과 글을 검토하고 차별적인 부분을 찾아 시정할 수 있도록 제안하는 일이었다. “평소에는 무심코 지나쳤을 것들이 새롭게 보이더라고요. 남녀차별, 장애우, 다문화가정 등 우리 주변에 가까이 있는 문제들이지만 잘 알지 못하는 것들에 대해 고민할 수 있었죠.” 인권보호활동이 새로운 시각을 배울 수 있는 공부가 된 셈이다. “수학공식 하나, 영어단어 하나를 아는 것도 중요하지만, 내가 살고 있는 나라를 아는 것 또한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그런 것이 정말 살아있는 공부라는 생각이 들어요.”

김군은 앞으로 과학과 인권에 관련된 다양한 서적을 읽을 계획이다. “너무 거창하게 생각할 필요는 없어요. 내 주변에서 실천할 수 있는 작은 것부터 시작하는 것이 바로 청소년이 사회에 참여하는 방법이라고 생각해요. 학생이니까 독서도 한 방법이죠.”

별보기를 좋아하는 소년, 환경지킴이가 되다

평소 별보기를 좋아한다는 이태우(16민족사관고1)군은 학교에서 ‘환경 지킴이’로 불린다. 지난 1년동안 강원도 곳곳을 누비고 다녔던 이군은 “환경보호활동은 내 취미”라며 “정의감이나 의무감이 아니라 활동 자체가 즐겁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군이 처음부터 환경보호에 큰 관심을 가지고 있던 것은 아니었다. 우연히 강원도의 멸종생물을 다룬 기사를 접하면서 “무언가 내가 해볼 수 있는 것이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단다. 막연한 바람이 선배들과의 만남에서 ‘푸른발자국’이라는 환경보호동아리로 발전했다. 동아리의 창립멤버가 된 것이다.

올해 이군과 ‘푸른발자국’은 ‘독중개’라는 멸종위기의 민물고기에 주목했다. “‘독중개’보호를 위해 정말 안 해본 일이 없는 것 같아요. 골프장 건설로 인한 피해를 조사하기 위해온 강을 돌아다니고, 자연보호지역 신청을 위해 시민단체도 만나고. 정말 백방으로 뛰어다녔어요. 환경콘서트까지 기획해 연주회도 열었죠.” 특히 환경콘서트는 이군이 꼽는 가장즐거운 추억이다. “어떻게 홍보를 더 잘 할 수 있을까 선배들과 이야기를 하던 중이었는데, 우연찮게 동아리 멤버들이 모두 악기를 다룰줄 안다는 사실을 알았어요. 그래서 즉석에서 공연을 기획하고 추진하게 됐죠.”

환경보호활동이 이군에겐 도전정신과 추진력을 배울 수 있는 또 다른 공부가 됐다. 학교공부에 방해되진 않느냐는 질문에 이군은 “가장 즐거운 취미생활”이라며 “학교생활의 활력소 역할을 한다”고 말했다.

“교과서와 문제집이 공부의 전부는 아니라고 생각해요. 환경오염을 직접 조사해보고 현장을 방문해보는 것이 환경의 중요성을 온몸으로 알게 되는 살아있는 공부라고 생각합니다.” 이군의 어머니 권병숙(47)씨는“처음엔 공부시간을 뺏기는 것 같아 반대했었다”며 “그런데 남을 배려할 줄 아는 아들의 모습을 보면서 ‘공부보다 더 소중한 것을 배우는구나’라는 생각에 지금은 후원자가 됐다”고 말했다. 이군은 “학생이기 때문에 공부도 소홀히 하진 않을 것”이라며 “학교공부와 환경보호활동 모두 열심히 할 것”이라고 다짐했다.

[사진설명]김영민군은 “내 주변에서 할 수 있는 작은 활동부터 시작하면 누구나 사회에 참여할 수 있다”며 “학생 신분에선 환경, 인권 등에 대한 작은 관심과 독서부터 시작하면 될 것”이라고 말했다.

< 정현진 기자 correctroad@joongang.co.kr >

< 사진=최명헌 기자 choi315@joongang.co.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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