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포럼] 개각·경제팀·시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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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경제가 새삼 어렵게 꼬여가고 있다지만 딱 한가지만 풀리면 그리 큰 걱정을 할 것도 없다. 바로 주가다.

주가가 고르게 쑥쑥 올라가만 준다면야 지금 구도로도 경제에는 꽤 새살이 붙는다. 기업 자금이 돌고 외국인들도 계속 기웃댈 것이며 그러는 동안, 예컨대 현대는 팔 것 팔아 빚 갚고 은행은 함께 물려들어간 부실의 늪에서 발을 뺄 수 있다. 그러면 주가는 더 오를 것이고.

*** 경제 챙길 시간 별로 없어

그러나 그 주가 하나 올리기가 그렇게 어려울 줄이야. 지금 주식시장이 계속 보내는 메시지는 명료하다.

"기업도 은행도 정부도 아직 미덥지 못하다" 이다. 그같은 메시지에 답을 주어 시장이 믿게끔 하는 것이 말처럼 그리 간단하지 않다.

현대만 해도 앞으로 어떻게 될 것인지, 현대에 물려 들어간 은행들은 괜찮을 것인지, 정부는 어디까지 개입할 것인지가 다 모호하다.

비단 현대만이 아니라 시장의 신뢰를 얻지 못하는 1차적인 책임은 역시 기업에 있다. 그간 외국인들이 주식을 집중 매입하던 몇몇 기업을 빼곤 정상적인 회사채 발행을 못하는 현실은 무엇을 말하는가.

"지난 2년여 동안 당신들이 한 게 무언가" 하고 시장이 외면하는 것이다. 이것 저것 다 때우고 막고 돌리면서 여기까지 온 정부는 시장의 차가운 반응이 야속하기도 하겠지만 시장의 메시지에 무슨 토(吐)를 달거나 요행을 바랄 입장이 아니다.

금융노조 파업 때 노사(勞使) 대신 노정(勞政)이 마주앉아 신관치(新官治)를 놓고 협상을 벌였지 않은가.

구조조정의 완급.강약 조절은 예나 지금이나 온전히 정부의 몫이고 구조조정의 최종 목표인 건강한 금융 시스템 구축도 결국 정부의 책임이다.

그런 뜻에서 요즘 주가가 보내고 있는 메시지는 "그간 뭐 하나 된 일이 없다" 가 아니라 "아직도 할 일이 산처럼 쌓여 있다" 이다.

경제의 부실을 더 매끄럽게 떨어내 어느 정도 제대로 된 금융 시스템이 돌아가는 것까지를 봐야 믿겠다는 것이다.

정작 걱정은, 이제 시간이 별로 없다는 사실이다. 우선 정권 후반기에 들어서면서 정치 일정에 가속이 붙을수록 경제 쪽에서 제대로 일할 수 있는 기간은 점점 짧아지고 있다. 아무리 길게 봐도 2002년 대선을 1년 앞둔 내년 하반기까지가 남겨진 시간이다.

아직은 오름세인 경기가 언제 정점을 넘을 것이냐 하는 것도 중요하다. 올 하반기든 내년 중이든 경기가 내림세로 돌아서면 구조조정은 힘들어진다.

또 계속 긴가민가하는 미국 경제동향도 우리에게 시간을 벌어줄지 아니면 시간을 단축할지 모르는 일이다.

요컨대 나라 안팎 상황이 그래도 괜찮을 때 경제를 더 추슬러놓지 않았다간 "그래도 그때는 세월이 좋았다" 고 한탄할 때가 오리라는 이야기다. 남북관계 개선도 우리의 경제력이 받쳐주지 않고선 어렵다는 점에서 더욱 그렇다.

이같은 상황에서 개각이 거론되고 있다. 시장의 신뢰는 아직 구하지 못했는데 남은 시간은 그리 많지 않다는 점을 생각할 때, 경제팀은 '누구냐' 보다 '어떻게' 가 더 중요하다.

우선 지난 2년여 동안 끌고 온 정책 기조를 근본적으로 바꿀 것이냐 아니냐를 결정해야 한다. 외환위기 이후 경제인 만큼 정책 기조를 바꾼다는 것은 대통령의 말을 바꾼다는 것과 같다.

단적인 예로 "경제 위기는 완전히 극복됐다" 는 말을 바꿔주어야 풀릴 일들이 많다. 2차 공적자금 투입 문제가 바로 그렇다.

기조를 바꿔야 한다면 말을 바꾸는 대신 사람을 바꾸면 되고, 그렇지 않다면 함량(含量)이 떨어지는 사람이 아닌 바에야 굳이 바꿀 필요가 없다.

*** '확실한' 경제팀장 나와야

또 새 경제팀을 짜든 부분 보완을 하든 확실히 힘이 실린 실질적인 경제팀장에게 권한을 주고 책임을 지워야 한다. 청와대 비서실장을 경제통으로 앉히는 방법도 있었으나 이왕 경제부총리제를 내놓았다면 재경부장관이 확실한 경제팀장이 돼야 한다.

이와 함께 금융건전성 감독과 시장 안정 책임을 따로 떼어놓아야 한다. 지금처럼 금감위.금감원으로 어정쩡한 한 지붕 두 기관이 양쪽을 다 만져서야 시장이 신뢰하는 투명한 금융시스템 구축은 어렵기 때문이다.

이런 점들을 먼저 결심하고 해결한 다음에야 '누구냐' 는 문제를 생각할 수 있고 그 '누구냐' 는 "그의 현실적 대안은 무엇인가" 에만 초점을 맞추어야 한다. 시간은 그리 많지 않은데 과연 어떤 경제팀이 짜여질까.

김수길 경제담당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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