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말라야 시편' 펴낸 고은 시인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3면

고 은(高銀.67)시인은 늘 바쁘다. 스스로 "내 안에는 1백명, 아니 그보다 더 많은 사람이 살고 있다" 고 밝혔듯 수백, 수천명의 삶을 혼자서 살아내고 있다.

허름한 주점에서 육두문자를 써가며 히히덕 거리는가 하면 미국 하버드대 세계의 준재들 앞에서 시학 강의도 한다. 막차 끊긴 시골 장터를 헤매는가 하면 실크로드의 사막을 낙타 타고 떠돌기도 한다.

"줄곧 나에게 이것이 함께였다. 도는 것, 돌고 도는 것, 착각의 고향을 떠나는 것이 그것이었다. 실컷 지쳐버리는 일이었다. 하지만 지친 혼으로 세상 만단(萬端)의 비유들을 불러다가 이름을 지어주는 일은 늘 새삼스러워진다. "

그런 고시인이 1997년 7월 40일간 히말라야로 훌쩍 떠났다 돌아온 것을 시로 옮긴 전작시집 '히말라야시편' 을 이번주 초 민음사에서 펴낸다.

위 '시인의 말' 에서 밝히고 있듯 하도 떠나고 또 떠나 이제 시인에게 있어 떠남은 '돌고 도는 것' 이다.

그 도는 것은 '착각의 고향' , 각질화된 일상에서 벋어나 세상 끝자락, 그 벼랑에서 비유를 붙잡는 것이다. 그렇게 매양 사물들과 새롭게 만나는 행위 자체가 시다. 때문에 항상 싱싱한 비유의 시인으로 살기위해 그는 만사람의 몫을 함께 산다.

"깨달은 자 미라래빠에게는/술이 진리의 비유였다/멋져!/멋져!//진리의 속 빚어넣으면/어느새 술이 되어/옛 사람들에게 뭉클하게 바칠 술이었다/만다라 신들이 함께 손뼉치며 기뻐하는 술이었다/깊숙이 명상 속에서 나온 사람들/한 모금 적시는 감로의 물이었다/모두 다 진리에 취해/마침내 벌렁벌렁 팔 내저으며 춤판이었다/멋져!"

1천년전 티베트의 전설적 시인 미라래빠를 빌어 술에 대해 쓴 '술' 한부분이다. 이 시를 읽다보면 회담을 성공적으로 끝내고 축배를 들던 남북 정상의 모습이 떠오른다.

그 두 정상 사이에 고시인도 잔을 들고 있었다. 남북의 긴장이 일순간에 녹으며 우리는 '멋져! 멋져!' 감탄할 수 밖에 없었다.

해발 6천5백m의 히말라야 산자락에서 산소희박의 사경을 헤매면서도 고시인은 감격과 감탄을 놓치지 않고 있다.

세상에 대한 감격이야말로 '히말라야시편' 을 우리와 너무 먼 구도(求道)로만 머물게 하지않고 생의 한가운데서 희열로 살아움직이게 한다.

"너무 많은 것들이 죽고 죽어서/이것이었다/오직 암갈색 광야//기억도/꿈도/한 조각 슬픔도 미련 없었다//그 광야 위 하늘빛/그것은 또 무엇하려고/그저 뚫린 채 소경 같이 푸르렀다//말로 나타낼 수 없는 빛깔/그 하늘빛/누구도 없애버리지 못할 빛깔/바로 그런 빛깔들 하나하나 흩어지는/밤이었다//있는 것을 없다 하다가/없는 것을 있다 하다가/그런 단말마의 광야였다"

모든 것 다 죽은 광야의 암갈색과 한 점 티없이 푸른 하늘의 빛깔, 그 죽음과 삶, 있음과 없음을 뚫고 나가려는 시인의 투혼이 번득이는 시 '다시 광야' 에서 전문이다.

그런 절체절명의 시공에서 뭘 꾸며 엄숙해하지않고 솔직하게 아악, 내지르고 마는 비명에 푸른 하늘의 빛깔은 더욱 오묘해진다. 우리 삶이 그렇듯이.

"어둑어둑한 밤 몰래 스며들어와/티베트 유가밀교 합존불 계시나니//부처와/부처의 아내/혹은 부처의 연인이/서로 얼싸안은 것/으 으 으 으/오르가즘을 앞둔 숨찬 것//여기에 어느 놈이 끼어들 것인가/오직 삼매경/여기에 어느 놈이 끼어들면/하늘 밖이 진노하고/땅 속 깊이 분격해 마지않을 것//아흐 절정!/여기에 예배함이 가장 성스러운 것/그냥 인자하게시리 근엄하게시리/일 끝낸 허탈로 앉아 있는 석가모니 부처 아미타 부처/그이보다야/백 번 성스러운 것"

어떤 설명도 군더더기로 떨어뜨릴 시 '합존불(合尊佛)' 전문이다. 성속(聖俗)의 구분을 단숨에 넘어서버리는 그곳, 도통한다고 히말라야까지 갔다가 결국 '천하 잡놈' 으로 내려오는 것이 윤회며 만다라의 진리요 우리네 삶의 요체는 아니겠느냐고 고시인은 이번 시집에서 묻고 있다.

이경철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