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렇게 생각한다] '천국의 신화' 유죄선고-반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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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사법부는 이번 판결을 통해 매체가 직접적으로 청소년에게 영향을 미칠 수 있으며, 이러한 문화적 표현물에 대해 법적으로 규제해야 한다는 논리를 확고히 했다.

재판부의 입장은 표현의 자유보다 청소년 보호를 우선시해야 한다는 메시지를 전달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이같은 재판부의 입장은 표현의 자유 문제에 앞서 만화에 대한 잘못된 상황인식이 반영된 오류라고 말할 수 있다.

가장 중요한 것은 과연 재판부가 '천국의 신화' 를 제대로 독해했느냐의 여부다. '천국의 신화' 는 8권이 출간된 성인용과 5권이 출간된 청소년용이 있다. 재판부는 '청소년용 천국의 신화' 에 대해 미성년자보호법을 적용했다.

그런데 재판부가 지적한 '집단 성교장면' 이나 '수간(獸姦)장면' 등은 청소년용에서는 찾을 수 없다. 성인용과 달리 청소년용에서는 이러한 장면을 대폭 삭제했기 때문이다.

다만 재판부가 수간을 의미하는 장면으로 판단했을 것으로 보이는 '사람이 되고싶은 늑대' 의 에피소드도 실은 성인용에 있는 '구체적인 관계' 는 삭제됐고, 단군신화에서 곰이 사람이 되는 것과 같은 팬터지를 강조한 것뿐이다.

두번째로 재판부가 음란성으로 내세운 기준인 '일반인들의 정서' 는 무엇을 뜻하는 것인가.

얼마 전 논란이 됐던 영화 '거짓말' 의 경우 영화 전문가들이 음란성을 가늠했던 데 비해 만화는 만화 전문가들의 의견이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그것은 만화가 저급한 매체라는 인식, 즉 '만화에 대한 일반인들의 편견' 이라고밖에 이해할 수 없다.

결국 이번 유죄 판결은 만화에 대한 한국 사회의 인식이 적나라하게 반영된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

즉 '만화는 불량하다, 만화는 음란하다, 만화는 청소년들을 타락시킨다' 는 단편적인 사고방식에서 아직 벗어나지 못한 것이다.

21세기 유망 콘텐츠라는 정부의 구호를 빌리지 않더라도, 만화는 지금까지 청소년들에게 꿈과 희망을 주고 스트레스를 풀어주는 거의 유일한 창구였다.

이번 판결로 청소년을 보호할 수 있게 됐다는 논리는 그것이야말로 '청소년 보호' 와는 거리가 있다는 점을 강조한다.

박인하 <만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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