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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달 없이 발차기에 의존한 최초의 자전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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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5면

1819년 영국의 인쇄물에 묘사된 최초의 두 바퀴 탈것 벨로시페드. 언덕을 오를 때는 어깨에 메고 올라가야 했고, 내려갈 때는 균형을 잃고 넘어져 다칠 위험이 컸다.

산업혁명이 가속화되던 19세기 초 유럽은 각 방면에서 발명가들의 새로운 실험을 격려했다. 독일 귀족 카를 폰 드라이스(Karl von Drais, 1785~1851)는 별난 사람이었다. 바덴 공국 산림청 책임자였던 그는 관할지 시찰을 위해 말이 아닌 사람이 움직이는 새로운 탈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그는 1817년 최초의 두 바퀴 탈것을 제작했다.

그의 이름을 따서 드라이지네(draisine), 또는 라틴어로 ‘빠른 발’을 뜻하는 벨로시페드(velosipede)로 알려진 이 탈것에는 페달도, 체인도, 브레이크도 없었다. 나무로 만든 작은 마차 바퀴 두 개를 앞뒤로 배열하고 횡목으로 연결한 다음 그 위에 쿠션 안장을 얹었다. 안장에 올라타고 상체를 세운 채 걷거나 뛰는 것처럼 좌우의 발로 땅바닥을 번갈아 차면서 그 추진력으로 앞으로 나아갔다. 프레임 앞에 연결된 구부러진 긴 막대는 핸들 역할을 했다. 패드를 덧댄 작은 받침대가 안장 앞쪽에 고정돼 팔꿈치를 올려놓을 수 있었다. 무게는 약 23㎏이었다. 바덴 공국은 1818년 1월 드라이스에게 특허권을 허용했다. 한 달 뒤 프랑스 특허권도 획득했다.

대중의 반응은 호의적이지 않았다. 브레이크가 없어 내리막길에서 큰 부상을 당하기 쉬웠고, 구동장치가 없는 탓에 오르막길에서는 어깨에 메고 이동해야 했기 때문이다. 언론은 “구두수선공들은 드라이스에게 감사해야 한다. 구두를 쉬 닳게 하는 방법을 고안했기 때문”이라고 비웃었다. 결국 벨로시페드는 실용성을 증명하는 데 실패했다. 그러나 대중의 거부만이 벨로시페드의 발전을 가로막은 것은 아니다. 두 바퀴 탈것의 발전과정상 페달 같은 구동장치의 장착은 기계공들이 보기에는 필연적이었고, 실제로 간단한 일이었다. 하지만 드라이스는 기술자들이 페달 추진식 탈것을 개발하려 하자 비난했다. 그는 ‘걷거나 뛰는 자연스러운 움직임’ 즉 ‘발차기 추진방식’만이 벨로시페드의 핵심이며, 두 바퀴 탈것을 추진하는 최상의 방법이라고 끝까지 고집했다. 황당한 고정관념이었다.

1867년 파리 출신 대장장이 피에르 미쇼가 앞바퀴에 페달이 달린 ‘페달식 벨로시페드’를 제작했고, 이 두 바퀴 탈것에 자전거(bicycle)라는 이름이 붙여졌다. 어색한 발차기 추진방식이 반세기 만에 사라진 것이다. 1879년엔 우리에게 낯익은 체인을 이용한 후륜구동 자전거가 처음 등장했다. 2010년 새해가 밝았다. 행여 우리도 ‘발차기 추진방식’만을 고집하고 있는 건 아닌지 돌아볼 일이다.

박상익 우석대 역사교육과 교수·서양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