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잃은 중동회담 '솔로몬 지혜' 없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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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9면

이스라엘.팔레스타인 평화협상의 완결판을 기대하면서 마라톤회담으로 진행된 캠프 데이비드 협상이 일단 결렬됐다.

빌 클린턴 미국 대통령은 오키나와 주요 8개국 (G8) 정상회담에 참석하기 위해 떠났지만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양측이 캠프 데이비드 산장에 남아 아직 한가닥 희망은 있다.

이번 협상 과정에서 가장 어려웠던 문제는 당초 예상대로 예루살렘 지위에 관한 것으로 전해진다.

예루살렘은 유대교.기독교.이슬람교의 성지(聖地)다. 기원 전 10세기 유대왕 다윗은 지금의 예루살렘 땅에 나라를 세웠다.

그후 바빌로니아와 로마의 지배를 거쳐 7세기 아랍인의 땅이 됐다. 유대교 성전 유적인 통곡의 벽, 예수 그리스도가 십자가에 못박힌 골고다 언덕의 성묘(聖墓)교회, 마호메트가 승천(昇天)했다는 바위 돔과 알 아크사 모스크 등 중요한 종교유적들이 산재해 있다.

예루살렘은 1948년 제1차 중동전으로 분할돼 동은 요르단, 서는 이스라엘이 차지했다. 종교유적들은 동예루살렘(구시가)에 집중돼 있는데, 이 곳은 아랍인들이 주민의 다수를 차지한다.

이스라엘은 50년 예루살렘을 수도로 정한데 이어 67년 제3차 중동전 때 동예루살렘을 점령, 예루살렘을 이스라엘과 분리할 수 없는 '영원한 수도' 라고 선포했다.

팔레스타인은 제3차 중동전에서 이스라엘이 차지한 요르단강 서안.가자지구를 돌려받아 팔레스타인 1국가를 세울 계획이다. 수도는 당연히 예루살렘이다.

야세르 아라파트 팔레스타인 자치정부 수반은 일찍부터 팔레스타인과 이스라엘이 예루살렘을 공유하는 방안을 주장해왔다.

로마가 이탈리아 수도인 동시에 바티칸(로마 교황청) 수도인 것처럼 한 도시가 두 국가의 수도인 것은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얘기다.

최근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이 예루살렘 문제에 대해 잠정적이나마 합의를 본 적이 있다. 이스라엘 대표 요시 베일린과 팔레스타인 대표 아부 마젠이 작성한 안(案)으로 예루살렘 외곽 아부 디스와 아자리야를 '예루살렘권(圈)' 에 포함시켜 아부 디스에 팔레스타인 수도를 세우는 안이다.

이 지역에선 팔레스타인이 완전한 주권을 행사하고, 주요 건물에 팔레스타인 국기를 게양할 수 있다. 예루살렘 시장을 선출할 수도 있다.

그러나 팔레스타인 사람들은 이 안을 반대한다. 다른 아랍국가들도 예루살렘 성지를 포기하는 것이라고 거부한다.

이들은 연로한 아라파트가 하루라도 빨리 팔레스타인 초대 대통령이 되려는 욕심에서 이스라엘에 지나치게 많이 양보하고 있다고 불만이다.

이를 의식한 듯 아라파트는 베일린-마젠 안을 거부한다고 밝히고 마젠을 협상대표에서 물러나도록 조치했다.

이스라엘은 예루살렘 굳히기작전에 들어갔다. 예루살렘 주위에 이스라엘인 주거지를 확대하고 다른 지역에 비해 집세를 저렴하게 책정, 영토 확보에 적극적인 젊은 부부들이 입주하도록 유도하고 있다.

이 때문에 팔레스타인인들과 충돌이 잦다. 97년 하르호마에 주거지 건설을 강행하면서 양측이 충돌해 평화협상이 한 때 중단된 적이 있으며, 이듬해 이스라엘 정부 내 과격파 장관이 예루살렘 확대정책을 독자적으로 발표해 소란을 일으키기도 했다.

예루살렘 문제는 캠프 데이비드 협상을 곤경에 빠뜨렸다. 얼마 남지 않은 임기를 '캠프 데이비드 Ⅱ' 로 화려하게 마무리지어 역사에 남는 대통령이 되려는 클린턴 대통령에게 솔로몬의 지혜를 기대해 본다.

정우량 국제담당 부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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