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일 '미사일 포기' 신빙성 있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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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북한의 '미사일 개발 조건부 포기 용의' 는 어느 정도 신빙성이 있는 것일까.

19일 러시아의 인테르팍스 통신이 "다른 나라들이 평화적인 우주탐사를 위한 로켓 발사체를 제공할 경우 미사일 계획을 포기할 것을 김정일(金正日)국방위원장이 약속했다" 고 보도하자 한국과 미국.일본 등 관계국들은 이 보도의 진의를 파악하기 위해 매우 분주했다.

만 하루가 지난 뒤 전문가들은 '가능성 희박' 쪽에 무게를 두고 있다. 물론 정부의 공식 입장은 아직까지도 "신중히 확인해 봐야 한다" 는 것이다.

하지만 미사일 개발 중단 가능성에 신빙성을 두는 정부 관계자는 전무하다고 할 수 있다.

미국과 일본도 회의적이긴 마찬가지다. 이처럼 회의적 시각이 많은 것은 보도의 신빙성에 의문이 제기되기 때문이다.

북한측의 조건부 포기의사를 전한 인테르팍스 통신은 정작 평양에 기자를 파견하지 않았다.

현지에 상주특파원이 있는 이타르-타스는 "金위원장이 북한은 로켓 발사체에 대한 평화적 연구를 목적으로 제공되는 것이라면 다른 국가들로부터 배타적으로 이에 대한 기술만 받아들일 용의가 있다고 단언했다" 는 내용만을 전했고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동행한 RTR.리아 노보스티.로시이스카야 가제타 등은 이에 관해 언급을 하지 않았다.

19일 모스크바 현지에서 수신된 TV보도는 "북한이 우주연구 등 평화목적을 위해 다른 국가의 미사일 기술을 이용할 준비가 돼 있다고 김정일 위원장이 말했다" 고 푸틴 대통령이 전하는 장면이 있을 뿐이다.

또 20일 조선중앙방송을 통해 보도된 11개항의 공동성명 전문에는 "조선은 자기의 미사일 강령이 그 누구도 위협하지 않으며 순수 평화적 성격을 띤다는 것을 확언했다" 는 내용만이 포함돼 있다.

모스크바의 일부 소식통은 "푸틴을 수행한 기자들이 직접취재를 봉쇄당했으며 회담 후 설명을 받았다" 고 전하면서 "푸틴과 金위원장이 미사일 문제를 논의한 것만은 사실" 이라고 말했다.

결국 이러한 상황을 종합해 보면 북.러간에 미사일 문제에 관한 논의가 있었던 것은 확실하지만 인테르팍스의 보도처럼 북한이 자주적 개발을 포기하겠다는 정도까지는 아닐 것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그러나 러시아 최고지도자로선 처음으로 평양을 방문한 푸틴 대통령이 북한의 미사일개발 문제를 공개적으로 언급하고 위성발사체 문제를 거론했다는 것은 의미가 크다는 게 전문가들의 공통된 평가다.

전문가들은 푸틴의 이같은 언급이 미국의 국가미사일방위(NMD)체제에 대응하기 위해 러시아측이 주장하고 있는 세계미사일통제체제(GCS)에 북한의 미사일 문제를 얽어매자는 것인지, 아니면 북한에 위성발사체 기술을 이전하기 위한 발판을 마련하자는 것인지 명확하지 않다고 말했다.

이들은 또 金위원장과 푸틴 대통령간 단독회담 때 북한측이 통역 한명만을 대동시킨 반면 푸틴이 전략로켓 문제에 관한 한 러시아 최고권위자인 이고리 세르게예프 국방장관을 배석시킨 점이 앞으로 어떤 의미를 갖게 될지 면밀히 분석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김석환.이철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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