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라의 달밤' 고 박시춘씨 명곡집 발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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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4면

"운다고 옛 사랑이 오리야만은 눈물로 달래보는 구슬픈 이밤…" ( '애수의 소야곡' .1937년)

"아- 신라의 밤이여'불국사의 종소리 들리어 온다'…" ( '신라의 달밤' .1947년)

"어머님의 손을 잡고 돌아설 때엔'부엉새도 울었다오 나도 울었소'…" ( '비 내리는 고모령' .1947년)

지금도 노래방에서 자주 불리는 우리 가요의 대표곡들이다. 이들 노래를 작곡한 고(故) 박시춘(朴是春.1913~96)씨의 명작집 '애수의 소야곡' (삼호출판사)이 발간됐다.

고인의 4주기를 기념해 유족들이 제작비를 부담하고 가요연구가 김점도(金店道.65)씨가 지난 30여년간 수집한 각종 자료를 정리해 책으로 묶은 것.

책에는 朴씨의 대표작 3백70여곡이 가나다 순으로 수록됐다. 朴씨가 남긴 곡은 모두 3천여곡에 이르는 것으로 알려졌으나 남아 있는 악보가 많지 않아 이번엔 이 정도로 만족할 수밖에 없었다는 金씨의 설명이다.

하지만 이번 명작집은 한국 대중가요의 개척자인 朴씨의 면모를 한눈에 보여준다는 점에서 의미가 각별하다. 장르를 불문하고 과거를 정리하고 재조명하는 자료집이 거의 없는 우리 문화계에 주는 시사점이 크다.

朴씨는 말 그대로 한국 대중가요사의 큰별. 위에 소개한 노래들 말고도 '가거라 38선' '전우야 잘 자라' '전선야곡' '굳세어라 금순아' '이별의 부산정거장' '찔레꽃' '물새 우는 강언덕' 등 수많은 히트곡으로 우리 서민들을 울렸으며 92년엔 대중음악 작곡가론 처음으로 문화훈장 보관장을 받기도 했다.

金씨는 특히 朴씨가 1945년 해방 이전에 작곡한 노래들의 작사자를 원래대로 찾아줬다는 사실을 강조했다.

朴씨는 해방 전에 주로 작사가 조명암.박영호씨와 같이 곡을 만들었는데 이들 작사가들이 월북하는 바람에 남쪽 음악인들이 작사자를 바꿔버렸다는 것.

예컨대 '남쪽나라 바다멀리 물새가 날으면…' 으로 시작하는 '고향초' 는 지금도 노래방에서 이부풍 작사로 소개되지만 사실은 조명암씨 작품이라는 설명이다.

명작집 편찬과정도 재미있다. 워낙 현존하는 자료가 빈약하고 가요집마다 노랫말이 달라 金씨 자신이 옛 음반에서 직접 채보(採譜)했다고 한다.

최대한 발표 당시 그대로 복원했다는 것이다. 다만 일부 오래된 노래의 경우 가수가 워낙 고성을 사용해 가사를 제대로 옮길 수 없어 이번에 싣지 못했다고 아쉬워했다.

"우리 가요계에도 보다 근본적이고 체계적인 자료관리가 이뤄지길 바랄 뿐입니다. "

'우리노래 대전집' '우리민요 대백과' 등을 내며 '걸어다니는 가요사전' 으로 불리는 金씨는 내년께 '한국가요 대전집' 20권을 출간하겠다고 말했다.

박정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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