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을 읽는다]“중국은 라틴아메리카식으로 간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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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세기 중국이 가는길』
조영남 저
나남, 344p, 15,000원.

미국과 중국, 중국과 일본 간에는 그동안 영역별(예를 들어 경제, 외교, 안보), 수준별(세계, 지역, 양자), 사안별(테러, 지구온난화, 금융위기), 시기별(정권교체)로 갈등과 협력, 대립과 제휴가 공존하는 복합적 관계가 형성되었고, 이는 향후에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중국은 미국과 일본에 대해, 미국과 일본은 중국에 대해 각각 개입 및 위험분산 정책을 추진했다.
그런데 이와 같은 복합적이 강대국간의 관계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이들의 관계 중에서 갈등과 대립(예를 들어 미국과 중국 간의 군사·안보적 대립)이나 협력과 제휴(예를 들어 미국과 일본의 군사·안보적 협력) 등 특정요소만을 일면적으로 강조할 경우 편향에 빠질 수 있다. 한국은 이런 편향에서 벗어나 주요 강대국간의 갈등과 협력의 가능성 모두를 대비하는, 또한 강대국간의 관계가 어떻게 변화하든 그것의 영향을 최소화할 수 있는 각 국가 및 지역에 대한 독자적 정책수립과 집행이 필요하다.(pp.273~274)

‘거대한 체스판’은 복잡하다. 특히 한국이 위치한 동북아 지역은 세계 강국들의 전략적 요충지이자 ‘거대한 체스판’ 그 자체다. 위의 인용문에서 보듯 조영남 서울대 국제대학원 교수는 최근 저서 『21세기 중국이 가는길』에서 미국, 중국, 일본이 복잡한 삼차 방정식을 풀어 나가고 있다고 말한다. 한국은 이 셈법을 따라가지 못하거나 맥락을 놓쳐 일차방정식 풀듯 외교하다가는 큰 낭패를 볼 것이라고 경고한다.

날이 갈수록 중국이 가는 길을 묻는 이들이 많아진다. 지금의 중국, 앞으로의 중국은 어제까지의 중국과 결코 같지 않다. 중국은 앞으로 어떤 길을 갈 것인가? 서울대학교 국제대학원에서 중국 정치를 강의하는 조영남 교수는 중국 앞에 네 갈래의 길이 놓여있다고 주장한다.
▶정치민주화를 통한 자유민주주의로의 발전을 이루는 동아시아의 길,
▶권위주의를 안정적으로 유지하는 연성권위주의의 길,
▶사회·정치적 혼란을 동반한 불안정한 권위주의인 라틴아메리카의 길,
▶정치 체제가 붕괴하는 소비에트의 길이 그 선택지다.

조 교수는 중국이 ▶엘리트 정치의 안정화, ▶국가체제의 합리화, ▶정치민주화, ▶세계 강대국화라는 추동력에 힘입어 발전을 거듭하고 있다면서 중장기적 전망을 내놓는다. 그는 중국이 소비에트의 길을 갈 가능성이 가장 낮으며, 동아시아의 길을 갈 가능성도 낮다고 말한다. 연성권위주의의 길을 갈 가능성이 비교적 높지만, 현재 상황에서 보면 라틴아메리카의 길을 답습할 가능성이 높다고 진단한다. 그렇다면 한국은 어떤 입장을 취해야 할까? 저자는 책 말미에 답을 내놓았지만 스포일러 방지를 위해 여기까지만…….

조교수는 서문에서 중국공부의 어려움을 토로하며 3년 전의 저서 『후진타오 시대의 중국정치』 서문을 재인용한다.
“정치학의 기존이론이나 개념을 가지고 섣부르게 중국정치를 재단하기보다는, 중국에서 발생하는 사건과 현상을 면밀히 관찰하고 이를 통해 중국정치의 특정한 유형과 특징을 발견하려고 노력해야 한다. 이론과 개념의 성급한 적용은 사실을 왜곡하고 잘못된 판단을 도출할 위험이 있기 때문이다. 이는 많은 시간과 노력을 요구하는 힘든 작업이다”

본 서는 중국 정치의 배경, 후진타오 체제의 특징을 살피고 중국 외교를 검토하고 결론을 내놓는 방식으로 구성됐다. 중국 정치에 대한 분석을 바탕으로 중장기 전망을 내놓은 것이다. 특히 저자는 5장 ‘21세기 중국의 “소프트 파워” 전략‘에서 중국이 화평굴기론, 베이징 콘센서스, 중화문명을 내세워 외부의 ‘중국위협론’, ‘중국붕괴론’에 ‘중국기회론’, ‘중국공헌론’으로 맞서고 있음을 이야기한다. 6장 ‘21세기 중국의 동맹정책: 변화와 지속’은 ‘전략적 협력동반자관계’로 격상된 한중 외교관계에 대한 이해를 도와준다. 즉, 중국이 말하는 ‘전략적 동반자관계(戰略協作伙伴關係)’는 1990년대 이후 중국외교전략의 가장 큰 특성이다. 현재 20여개 국가 및 지역과 체결하고 있으며 미국이 전 세계를 상대로 구사하는 전통적 동맹관계와 다르다. 즉 “공동이익을 기초로, 상호 비대결을 전제로, 비동맹 및 제3국 비겨냥을 요구로, 개입과 대화를 형식으로, 협상과 협력을 목적으로, 중국이 기타 모든 국가와의 상승적 상호관계를 발전시키기 위해 맺은 쌍무적 외교관계”라 중국 학자는 정의한다.(p.243)

일반적으로 정치발전이라 함은 정치적 ‘민주화’만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제도화’를 의미하는 것으로 이해해야한다. 한국이 겪어온 길도 제도화에 덧붙여 민주화를 이룬 것이다. 저자는 중국 역시 정치의 제도화를 중시한다고 분석한다. “중국이 지난 30년 동안 실제로 추진한 정치개혁도 ‘중국 특색’보다는 동아시아 발전국가와의 유사성이 더 크게 부각된다.……한마디로 중국도 동아시아 발전국가처럼 경제발전 최우선과 ‘민주화에 선행하는 제도화’라는 정치발전 모델을 추구했다.”(p.95)

이 책에는 몇가지 아쉬운 점도 눈에 띈다. 저자는 중국 공산당이 국민의 정치참여를 확대하기 위한 적극적 개혁조치가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즉, 중국은 직접경쟁선거와 같은 국민의 정치참여를 보장하고 확대해야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직접경쟁선거가 툭하면 ‘중국특색’을 찾는 공산당에게 얼마나 매력적일까하는지 의문이다. 게다가 현급, 향진급 지방정부가 막강한 중앙정부, 성(省)정부로부터 어떤 독립적 권한도 갖지 못한 상태라는 지적이 많다. 정융녠의 ‘약탈정부론’은 치안, 교육 등 가장 기본적인 공공 서비스 조차 제공하지 못하는 지방정부의 문제점을 신랄하게 지적한다. 이런 상태에서 기층 선거가 일반인들에게 정치참여 욕구를 해소해 줄 수 있을까?최근 이런 문제점을 지적하는 보도가 중국 내에서 잦아지는 것을 볼 때 당국이 문제를 직시하고 해결책 모색에 나선 것으로 판단된다.
끝으로, 저자는 본서에서 중국공산당 17차 전국대표대회의 노선, 정책, 인사 결정을 중점적으로 분석했다. 최근에는 60년대생 성서기가 배출되는 등 18차 전국대표대회를 위한 사전 인사가 벌써 시작됐다. 앞으로 계속 쏟아져 나올 중국 정치 지형 변화에 대해서도 저자의 명쾌한 해설을 들을 수 있는 기회가 많아지기를 기대한다.

신경진 중국연구소 연구원 = xiaoka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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