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레터] 컴퓨터에 묻힌 글쓰기, 글읽기로 되살립시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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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기업들이 직원의 글쓰기 능력을 높이 평가하기 시작했다는 소식이 눈길을 끌었습니다. 최근 AP 통신에 따르면 미국 근로자 중 3분의 1 가량이 업무에 필요한 글쓰기 능력을 제대로 갖추지 못하고 있답니다. 간결하고 정확한 글쓰기가 채용이나 승진 시험에서 가장 중요한 평가 항목이 되었답니다. 어려서부터 토론과 에세이를 익히는 미국 교육 풍토를 감안하면 놀라운 현상입니다.

중국에서는 이보다 더 심각한 기사가 나왔습니다. 중국 청년보가 네티즌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에서 응답자 430여명 중 67%가 간혹 특정 글자를 어떻게 쓰는지 생각나지 않을 때가 있다고 대답했습니다. 응답자의 30%는 필기구를 사용하는 일이 거의 없다고 합니다.

아무리 인터넷 시대고 모든 게 컴퓨터 자판으로 처리된다 해도 너무하지 않습니까. 글쓰기 능력이 떨어지는 원인은 물론 전자매체의 확산에 있습니다. 생각할 겨를을 주지 않는 영상매체에 빠져 지내다보면 글쓰기에 필요한 사유 능력이 떨어지게 마련입니다. 아마 우리나라도 여기서 크게 벗어나지 않으리라 짐작됩니다.

그래도 다행한 것은 글쓰기의 필요성을 다시 느끼는 독자가 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독일 일리스-솔로몬 대학교 교육센터 소장인 루츠 폰 베르더 등이 창조적 글쓰기의 요령과 글쓰기의 의미 등을 짚은 『교양인이 되기 위한 즐거운 글쓰기』(들녘)가 번역 출간 2주 만에 1만5000부나 나갔다고 합니다. 인터넷 등에서 자신을 표현하기 위해서라도 글쓰기가 중요하다는 인식에서겠지요. 이 책에서 제시한 주제를 놓고 조금이라도 더 아름답고 정확한 문장을 쓰기 위해 시름할 독자들의 모습이 눈에 그려집니다.

그런데 사실은 글쓰기를 익히는 데는 글읽기만한 게 없습니다. 다양한 장르의 책을 통해 아름답고 깊이 있는 문장과 그 책에 담긴 저자의 경험과 지식을 내것으로 소화해낼 수 있다면 글쓰기 공부가 따로 필요할까요?

정명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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