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자민련 몽니나 부릴땐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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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4월 총선 이후 자민련이 취해온 행태는 정말 가관이다.

국회법상 20명 이상으로 규정된 국회교섭단체를 10명으로 하향조정해 달라며 사사건건 되지도 않은 '몽니' 로 일관하고 있다.

그런 생떼전략의 연장선상에서 자민련 소속 의원들은 어제 국회 본회의에서 행해진 대법관 임명동의안 표결에 불참했다.

국회법 개정을 안해주면 모든 본회의와 상임위의 표결에 불참한다는 것이다. 한나라·민주 양당 모두가 과반수 의석을 확보하지 못한 상태에서, 특히 소수 여당인 민주당을 향해 '자민련 없이 어디 이기나 보자' 는 배짱놀음이다.

자민련이 교섭단체 구성을 위해 매달리는 이유를 모르는 바 아니다. 교섭단체가 돼야 국회에 널찍한 방 몇개와 10여명의 정책연구위원도 확보할 수 있고 연간 수십억원의 입법지원비도 챙기게 되니 여기에 집착하는 게 자민련으로선 당연하다 할 수 있다.

그러나 이는 자민련 내부 사정일 따름이다. 전에는 아무말 하지 않다가 자신들이 규정에 미달한다고 해서 법을 고치자고 나서는 것은 입법부 당사자로서 스스로를 부정하는 억지에 불과하다. 선거 전 50석이 17석으로 오그라든 것은 누구의 탓을 할 수 없는 자업자득이고, 그것은 엄연한 민의의 심판이었다.

어디 그뿐인가. 선거 때는 민주당을 향해 다시는 상종할 수 없는 거짓말쟁이 집단이라고 매도해 놓고 나선 그 메아리가 가시기도 전에 총재는 총리로 지명돼 충성을 맹세하고, 막판까지 고개를 내젓던 '오너' JP는 대통령을 만난 뒤 한·일의원연맹회장직을 수락하는 등 표변과 훼절의 몸짓들은 민망스러운 상태다.

정도(正道)대로라면 정치권에서 몽니를 부릴 게 아니라 고개를 숙인 채 국정운영에 열과 성을 다하면서 때를 기다려도 부족할 판이다.

그런데 되레 뒤숭숭한 정치판을 더 어지럽히면서 겉으로나마 유지되는 상생의 정치를 상극의 정치로 몰고 가는 데나 일조하고 있다.

사태가 이쯤 되니 내부 일각에서는 민주당과의 합당론이 끊이지 않고 다른 한쪽에선 지도부의 파렴치와 무원칙을 걱정하는 소리가 잇따르고 있는 게 자민련의 현주소임을 알아야 한다.

생존을 위한 몸부림을 치더라도 웬만큼 납득할 수 있는 방안을 구사해야 국민의 성원과 고대하는 교섭단체 구성의 기회가 올지 모른다. 하지만 겨우 궁리해낸 게 소수 여당을 윽박지르기 위한 표결불참이라면 곤란하다. 의원의 표결은 권리이자 의무다.

경우에 따라선 표결불참도 정치공세의 요긴한 수단이긴 하지만 오늘의 자민련엔 명분이 약한 어깃장에 불과한 것으로 비칠 수 있다. 국민적 공감을 얻지 못하면 그나마 누리는 국회운영의 조정자 내지 캐스팅 보트의 이점마저 사라질지 모른다. 자민련은 더 이상 누추한 모습을 보여서는 안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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