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약집성방·의방유치 없었다면 동의보감도 없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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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9면

인기 드라마 '허준' 이 지난 주 종영됐다. 마지막 회에는 허준이 필생의 역저인 동의보감(東醫寶鑑)을 완간하는 장면이 나와 가슴 뭉클한 감동을 주고 있다.

동의보감은 선조의 명을 받아 1596년 착수, 14년만에 완성한 것으로 의방유취(醫方類聚)와 향약집성방(鄕藥集成方)과 더불어 우리나라 3대 의서로 꼽힌다.

임진왜란 때 장인들이 일본에 끌려가고 활자를 도둑맞는 등 등 수난 끝에 1610년 가까스로 초간본이 완성됐다. 현재 서울대 규장각에 이 초간본의 일부가 보존되고 있다.

동의보감의 가치는 방대한 의학을 체계화했다는 점. 경희대한의대 원전교실 박찬국교수는 "신체부위별.질병 및 증상별로 나뉘어 일목요연하게 정리되어 있다" 며 "의생과 의원들이 공부하고 질병을 치료할 때 쉽게 찾아볼 수 있도록 편찬했기 때문에 지금도 의학교과서로써의 가치를 지닌다" 고 말했다.

그러나 동의보감도 이전에 발간된 의방유취와 향약집성방이 없었다면 세상에 선을 보이지 못했을 것이라고 원전학자들은 입을 모은다.

향약집성방은 우리나라 약재 사전의 효시. 한국한의학연구원의 신순식 책임연구원은 "85권으로 된 이 책은 세종13년(1431년)왕의 명을 받아 2년만에 만든 것으로, 비싸고 희귀했던 중국 약재를 국내산으로 대체하기 위해 우리나라 토종 약재를 연구한 방대한 약전(藥典)" 이라고 설명했다.

의방유취는 중국을 포함해 현존하는 동양 최대의 의서. 한(漢).송(宋).원(元).명초(明初)의 의학을 총망라해 기초이론에서부터 임상치료와 한약재.처방을 이해하고 고증하는 데 없어서는 안될 문헌으로 꼽힌다.

세종의 명을 받아 양성지 등이 1443년부터 작업을 시작, 문종과 세조를 거쳐 32년만인 성종 8년(1477년)초간본 2백66권이 출간됐다.

9백50만자의 의학정보가 담겨있는 의방유취의 처방건수는 무려 5만여개. 동의보감 8천여 처방의 6배가 넘는 양이다.

현재 의방유취 원본은 일본의 궁내성에 보존되어 있는데 한국한의학연구원에서 마이크로필름(35㎜44롤)으로 떠와 1997년부터 전산화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올해 말이면 원본과 번역본을 검색할 수 있는 CD롬이 출시될 예정.

신연구원은 "허준 외에도 당대에 유명한 내의원들의 살을 깎는 연구와 집필 노력이 없었다면 동의보감은 나올 수 없었다" 며 "이러한 과정을 거쳐 1894년 우리나라 고유의 의학체계인 이제마선생의 사상의학 이론이 정립됐다" 고 말했다.

고종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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