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 '장기수 송환시기' 협상카드로 활용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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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남북한이 금강산 적십자회담에서 합의안을 내놓았다.

6.15 공동선언 이후 첫번째 남북 대화를 성공적으로 이끌어 앞으로 당국대화에 탄력이 붙게 됐다.

또 비전향 장기수 송환과 이산가족 면회소 설치 등 해묵은 문제를 해결하는 데 일단 돌파구를 마련했다.

회담 타결의 실마리가 된 것은 지난달 29일 회담에서 북측이 수정안을 제시하면서부터다.

첫 회담에서 '비전향 장기수 8월 초 송환' 을 주장하던 북측 최승철 단장은 9월 초로 시기를 늦췄다. 崔단장은 "우리측 안은 두번 세번 양보한 방안" 이라고 자평했다.

평양방송도 "북측이 대폭 양보했다" 며 특히 면회소 개설 원칙을 밝힌 것은 "남측 제안도 충분히 고려한 획기적 안(案)" 이라고 주장했다.

그렇지만 북한측의 '양보' 주장이 특별한 알맹이가 없다는 분석도 나온다. 6.15 공동선언은 '이산 방문단을 교환하며 비전향 장기수 등 문제를 푼다' 고 돼 있다.

문맥을 따져보면 장기수 송환은 8.15 또는 그 이후에 가능한 일이었다. 평양방송은 이 대목을 '동시 교환을 의미한 것' 이라고 풀이했다.

정부 당국자는 "회담 초에 崔단장이 '8월 초 송환' 을 주장하다가 한발 양보하는 듯한 제스처를 취해 극적 효과를 높였다" 고 풀이했다.

이산가족 면회소의 경우도 북한은 개설 원칙만 밝히고, 날짜를 박는 것을 거부했다.

북측의 '추후 논의' 약속이 제대로 지켜지지 않았던 선례 탓에 정부 일각에선 우려의 목소리도 있다.

회담 관계자는 "합의문 타결의 배경은 북한의 양보가 아니라 정상회담으로 조성된 남북 화해 분위기" 라고 강조했다.

이번 회담으로 북한은 비전향 장기수를 모두 돌려받게 됐다.

북한은 남북 화해와 대미.대일 관계 정상화 과정에서 이완될 수 있는 주민들을 묶어두는 데 긴요한 '사상적 무기' 를 갖게 된 셈이다.

이산 방문단 규모와 방법은 북한측 방안대로 관철시켰다. 원만한 합의를 통해 6.15 공동선언의 성실한 이행 등 변화한 모습을 보이고 있음을 부각시킨 것이다.

남측은 이산가족 문제 해결을 위한 지속적인 대화창구를 마련한 게 성과다. 적십자 회담을 계속 열어 상봉 정례화와 면회소 문제를 논의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산가족 면회소는 개설까지 적지 않은 진통이 예상돼 이번 회담의 성과물로 적절한 평가를 받기에는 이르다.

무엇보다 국군 포로 문제가 뚜렷한 해결책을 마련하지 못한 점이 부담으로 남아 있다.

또다른 정부 관계자는 "비전향 장기수만 돌려보내고 국군 포로 문제를 관철하지 못한 것이 우리 사회에 남북한 상호주의 원칙, 이념논쟁으로 등장할 것" 이라고 걱정했다.

국군 포로에 대해 북측은 존재 자체를 부인하고 있어 아직 정확한 규모.실태를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

이영종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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