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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물 신축에 돈 너무 쏟는 국립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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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5면

국민의 세금으로 운영되는 국립 서울대의 예산이 불필요한 데에 많이 쓰이고 정작 필요한 곳에는 쓰이지 않는 것을 지켜보자니 재학생으로서 참 안타깝다. 예산을 받아쓰는 단과대나 부서에서야 어디 한푼이라도 이유 없이 받아쓸까만 학생이 느끼기에는 분명 그렇지 않은 부분이 있다.

서울대 시설관리국에서 펴낸 '2003 시설편람'을 보면, 2003년 한 해 동안 서울대 관악캠퍼스 안에서 신축.증축 공사를 한 건물이 19개동에 달한다. 전체(195개동)의 10%에 달하는 건물을 새로 지은 것이다.

건물의 증가는 당연히 녹지의 감소를 불러왔다. 건물의 크기에 비례해 의무적으로 주차장을 마련함으로써 잔디밭은 아스팔트나 시멘트 콘크리트로 덮였다. 이제 관악캠퍼스 안에서 학생들이 편안히 앉아 담소를 나눌 공간을 찾기는 힘들다.

서울대는 서울시 전체에서 전기를 가장 많이 쓰는 건물로 꼽히는데도 이렇게 많은 건물을 신축하고 있다. 지난 여름에는 학교 전체 게시판에 전기를 아껴쓰자는 공지문이 올랐을 정도다. 실제로 전기를 많이 쓰는 공학관은 전기 과부하에 따른 시설 보수로 여러 번 단전됐다.

전문가들(미국 Lawrence Berkeley National Laboratory의 Lee Schipper 등)의 논문을 보면 '아껴 쓰는 것'만으론 에너지의 절대소비량 증가를 막을 수 없다는 것이 이미 과학적 연구로 증명돼 있다. 그런데도 학교 본부는 에너지의 절대적 소비량을 엄청나게 늘릴 수밖에 없는 건물을 무한정 지으면서 학생들에게 에어컨을 끄라고 말한다. 어불성설이다.

서울대 전체에서 지난해 건물 신축에 들어간 예산은 1436억원에 이른다. 2002년에는 1143억이었던 예산이 더 느는 것을 보아 일시적으로 건물 신축에 돈을 집중시키는 것도 아님을 알 수 있다. 한정된 예산이 과도하게 시설 확장에 들어가면 결국 다른 부문의 예산을 포기해야 한다.

대학원생으로서 가장 크게 그 피해를 보고 있는 것은 도서 구입 예산 부족이다. 서울대는 9월 10일 이후로 원서를 구입하지 못하고 있다. 2004년 도서 구입 예산이 바닥났기 때문이다. 넉 달 동안 해외 도서를 주문할 수 없는 것이다. 일년 중 3분의 1을, 학생들은 보고 싶은 책이 있어도 어쩔 수가 없다. 급한 사람은 한권에 몇십달러 혹은 100달러가 넘는 책을 스스로 사서 볼 수밖에 없다. 국공립도서관연합회의 통계에 따르면 서울대는 통계한 해에 구입한 단행본이 국내 국공립대학 도서관 중에서도 6위밖에 안 된다.

지난해 기준으로 일년에 48억원에 달하는 자료구입 예산 중 대부분을 전자저널 구입에 쓰다 보니 단행본은 포기한 결과다. 그렇다고 전자저널을 마음껏 볼 수 있는 것도 아니다. 블랙웰(Blackwell)과 같은 세계적 출판사에서 내는 수백종의 전자저널은 서울대에서 구독하지 않기 때문에, 연구실 후배의 출신 사립대 도서관 아이디로 보고 있는 실정이다. 이뿐인가. 올해 초에 서울대 황우석 교수가 논문을 낸 미국 학술지'사이언스(Science)'는 영국의 '네이처(Nature)'와 더불어 세계 과학의 첨단이 실리는 학술지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서울대에서 이 두 잡지의 전자저널을 구독한 것이 겨우 지난해부터라는 것이다. 2002년까지는 이 두 잡지의 최신 피디에프 파일을 보려면 잡지를 개인적으로 구독하는 교수님의 아이디와 비밀번호를 공유해야만 했다.

한 채에만 수십억원이 드는 건물을 매년 수십채 지으면서도 학생들이 보고 싶은 책과 학술지를 사는 데는 몇억원도 아까운 학교. 겉만 번지르르한 건물을 벗어나면 아스팔트 바닥의 주차장만 있는 캠퍼스. 열람실 바로 옆으로 하루종일 자동차가 지나다니고, 아이디어가 있어도 그것의 기초를 확인하고 확장시킬 수 있는 책을 볼 수 없는 도서관. 실로 '몸과 마음이 뛰놀 공간을 잃어가는' 한 대학교의 불행한 현실이 안타깝다.

박훈 서울대 생명과학부 석사과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