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시론

동북아 에너지공동체 만들자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26면

러시아를 방문한 노무현 대통령이 푸틴 대통령과 한국과 러시아는 '서로 신뢰하는 포괄적 동반자 관계'라고 선언했다. 또 이를 위한 10개 항의 공동성명도 발표했다. 공동성명의 내용은 다양하지만 무엇보다 우리의 주목을 끄는 것은 에너지 및 동시베리아 개발 등과 연관된 양국 간 협력에 관한 것이다.

익히 알려져 있듯 동북아의 한.중.일 3국은 2002년 현재 세계 에너지 소비에서 각각 10위, 4위 및 2위를 차지한다. 특히 석유.천연가스.석탄과 같은 화석에너지의 경우 일본과 한국은 수입에 전적으로 의존하고 있으며, 중국은 질을 따지지 않는다면 석탄만 자급자족이 가능한 상태다.

이런 가운데 동북아 3국에 새로운 에너지 공급국으로 떠오르는 곳이 바로 러시아다. 소련 시절에는 주로 유럽 지역에만 에너지 자원을 공급했던 러시아가 냉전종식 후 극동.동시베리아 지역의 미개발 에너지자원을 활용해 동북아 지역의 실질적 플레이어로서 부상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노무현 대통령이 러시아를 방문해 한국경제의 장기적 성장의 기본동력이라 할 수 있는 에너지 안보와 관련한 중요한 협의를 진행한 것은 의미심장하다.

동북아 지역은 대량 에너지 수요국인 한.중.일 3국과 세계적인 에너지자원 부존국 러시아가 지리적으로 인접해 있어 국가 간 에너지협력에 관해 상호 이해의 조화가 가능하다. 그 때문에 우리의 동북아 시대 구상과 보완적 정책을 수립할 수 있어 이 지역협력의 가속화 계기는 그 의미가 더 크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현재 동북아 3국이 러시아의 자원을 놓고 구애하는 최근까지의 양상은 갈등형의 '제로섬'게임 성격을 띠고 있다. 또 러시아는 나름대로 이들 3개 국가의 수요를 분리해 국가 간 경쟁을 유도하는 듯한 태도를 보이고 있다.

최근 수년 동안 동시베리아 천연가스 및 석유자원의 개발과 파이프라인 건설을 둘러싸고 보이는 중국과 일본의 각축전, 이에 대한 러시아의 저울질, 한국의 틈새 공략 시도 등 동북아 지역에서 나타나고 있는 국가 간 에너지자원 확보 경쟁은 가위 국운을 걸어 놓은'에너지 전쟁'이라고 불러도 손색이 없을 정도다. 하지만 이들 3국의 정책이 잘 조율되지 못한 채 흘러간다면 동북아의 에너지자원 확보 경쟁과 러시아의 절대 공급자로서의 독점적 우위화 전략은 장기적으로 한.중.일 및 러시아 모두에 이롭지 않다.

러시아에 의한 공급독점 구조 하에서 벌어지고 있는 지나친 경쟁은 에너지 가격을 비정상적으로 상승시켜 한.중.일과 같은 수요국가들에 대안을 모색하게 만들 것이고, 에너지자원 개발을 토대로 극동.동시베리아 지역의 경제개발을 추구하는 러시아에는 안정적인 거래처 확보를 어렵게 할 수 있다. 그 때문에 한.중.일 3국과 러시아는 갈등을 부추기기보다는 4자 간 에너지 협력을 추구해 지역 국가들 모두에 안정적 에너지 수급 체제 구축을 가능케 하는 윈-윈의 해법을 마련해야 한다.

일본과 중국의 에너지 자원 확보를 위한 과도한 경쟁은 한국에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 그 때문에 한국은 동북아 에너지 협력을 위한 중재자로서의 역할을 살릴 수 있는 정책을 펼쳐야 한다. 한국은 중국과 일본에 대해 한.중.일 공조체제를 유도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러시아에 대해 개별 수요국의 경쟁을 유도하기보다는 공급국과 수요국이 협조해 극동.동시베리아 지역의 에너지자원을 가장 효율적으로 개발하기 위한 체제를 갖추도록 경제.외교력을 집중해야 한다.

이 때문에 한국은 러시아에 대해서만이 아니라 중국과 일본에 대해서도 동북아 에너지 협력을 국가 간 협력 의제로 제안해야 할 것이다. 한.중.일 3국도 각개약진보다는 수요공동체로 묶여 이 같은 러시아의 단일 공급체계에 대응할 필요가 있다.

동북아에서 안정적 에너지 수급 시스템 구축을 위한 국가 간 협력은 동북아의 평화와 번영에 기여할 수 있다. 동북아 국가들은 일찍이 1950년대에 시작된 서유럽 국가 간의 석탄.철강 협력체가 오늘날 유럽연합(EU)을 탄생시킨 모체가 됐다는 역사적 교훈을 타산지석으로 삼아야 할 것이다.

안충영 대외경제정책연구원 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