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e칼럼

주인 없는 기업은 망한다?

중앙일보

입력

요즘 과거 공적자금을 투입했던 기업을 매각하는 것이 재계의 화두다. 일부 기업은 성공적으로(?) 매각을 했는데, 매입자들이 먹고 튀는 바람에 다시 매물로 나와 ‘먹튀’ 논란을 빚고 있고, 일부 기업은 주인을 찾지 못해 장기대기 상태다.

정부로서야 국민의 세금이 투입된 돈이니 만큼 가능한 빨리 회수도 하고, 제대로 된 주인을 찾아줌으로써 기업도 살리는 일거양득의 효과를 거두고 싶을 것이다. 하지만 어째 그 결과는 신통치 않아 고민스러운 모습이다.

D조선의 경우에도 그 동안 몇 차례 매각 시도가 있었지만 주인이 되겠다고 나선 자들의 문제가 드러나면서 중간에 포기함으로써 엎어진 매각 실패 사례! 정부도 초조하고 D조선 임직원도 불안한 나날을 보내고 있다.

그러는 사이에 D조선은 수년간 대규모 흑자를 기록하며 완전히 회생한 것은 물론, 알짜 기업으로 변모한 상태다. 글로벌 금융위기 속에서도 튼실한 내성을 보이며 선방하고 있다. 국민 세금과 임직원의 땀으로 재기에 성공한 국민기업! 그것이 현재의 모습이다.

그런데 왜 정부는 사실상 국민이 주인인 이 회사에게 ‘주인’을 찾아주려 애쓰는 것일까? ‘주인 없는 기업은 망한다’는 오랜 속설의 마법에 걸린 것을 아닐까? 정부는 언제나 그랬다. 국민대표 기업 포스코를 매각할 당시에도! 하지만 포스코는 지금 ‘주인 없는 기업’으로 건재하다.

이와 관련해, 미국 정부가 GM을 처리하는 방식을 참고할 필요가 있는데, GM은 정부 구제금융 100억 달러, 노동조합 출연금 102억 달러, 무보증 채권 270억 달러를 출자전환해서, 정부가 50%, 노조가 39%, 채권단이 10%의 지분을 확보하는 사실상의 국유화를 시킨 바 있다. 우리나라 기준으로 보면, ‘주인 없는 기업’이 된 셈이다.

말이 나온 김에 대체 어떤 기업을 ‘주인 없는 기업’이라고 하는 지도 명확하게 해둘 필요가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주인’을 특정 개인 또는 그 개인이 지배하는 기업으로 보는 경향이 있는데, 그 이면에는 ‘경영권을 1인이 지배해야 한다’는 인식이 자리 잡고 있다. 그래야 기업이 ‘안 망한다’는 것인데, 이런 의식이야 말로 전근대적인 것 아닐까?

주식회사의 형태를 띠고 있다면 어떤 경우에라도 엄밀하게 말해 주인이 없는 상태는 아니다. 경영권을 지배한 주인이 없다는 뜻일 뿐인데, 시대는 점점 그런 유형의 ‘주인 없는 기업’의 시대로 나아가고 있다. 조금 전에 지적한 포스코도 실은 주인이 많을 뿐이지 주인이 없는 상태는 아니며, 전문경영인이 경영권을 행사하는 상태에서 잘 나가고 있는 것이다!

이쯤에서 우리 사회가 지향해야 할 미래의 기업 유형은 어떤 것일까도 한번 생각해보자. 족벌 경영을 하는 재벌 유형? 아니면 포스코 같은 전문경영인 중심 유형? 아마도 후자일 것이다. 그래서 재벌 기업에 대해서도 전문경영인 체제를 구축하라고 말하는 것일 테고.

소위 ‘주인이 없는’ 상태를 찬찬히 뜯어보면 긍정적 측면도 상당히 많다. 부당한 경영간섭이 없다는 뜻이고, 족벌경영이 없다는 뜻이고, 경영권에 대한 견제와 균형이 잘 이뤄지는 시스템이란 뜻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는 오히려 주인 있는 기업이 되는 것을 경계해야 하지 않을까 싶기도 하다.

과거 대우 계열사들도 좋은 사례다. 김우중 회장의 영향권으로 벗어난 이후, 힘든 과정을 거쳤지만 결국 거의 대부분 회생했고, 지금은 잘 나가고 있지 않은가! 오히려 새 주인 금호그룹에 소유권과 경영권을 넘겼던 대우건설만이 홍역을 치르고 있다.

정부가 지금 이들 대우 계열사에게 새 주인을 찾아주려고 애쓰는데, 회사를 살려낸 임직원에게 대우를 맡기는 것이 오히려 나은 대안일 수도 있다고 본다. 소유권은 국민에게 경영권은 대우맨에게 한번 줘보면 어떻겠느냐는 이야기다. 그런 점에서 위 D조선 민 조합장의 주장도 귀담아 들어볼 가치가 있다. 우리사주조합이 활성화된 회사에서는 파업도 적다지 않는가?

‘주인 없는 기업 망한다’는 가설을 뒤엎는 사례는 발칙한 마이클 무어의 다큐멘터리, ‘자본주의: 러브스토리‘에 등장하는 기업, ’Isthmus Engineering‘에서도 찾을 수 있다. ’one person, one vote‘, 모든 직원에게 1표의 결정권을 부여하는 이 회사는 우리 기준으로 보자면 명백히 ’주인 없는 기업‘이지만, 잘 나가고 있다고 한다.

이종훈 칼럼니스트

▶ Joins 직장인 섹션 '사내정치' 칼럼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