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9엔짜리 ‘일본의 보상’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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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때 일본에서 강제노역에 시달렸던 한국 근로정신대 할머니들에게 99엔(1279원)씩의 후생연금 탈퇴수당이 지급됐다.

23일 아사히(朝日)신문에 따르면 1940년대 나고야(名古屋)시 미쓰비시(三菱)중공업 항공기 제조공장에서 일했던 한국인 할머니 7명이 일본 정부로부터 99엔씩의 탈퇴수당을 받았다. 이들은 98년 탈퇴수당을 신청했고 일 사회보험청은 9월 “44년 10월부터 45년 8월까지 11개월간 후생연금에 가입했던 사실이 인정된다”며 탈퇴수당 지급계획을 밝혔다. 당시 사회보험청 결정은 일 정부가 강제노역을 처음 인정한 의미 있는 진전으로 평가됐다.

그러나 이달 중순 지급된 금액은 단돈 99엔이었다. 강제동원 및 노동 강요는 인정하면서도 화폐가치를 반영하지 않은 것이다. 사회보험청은 “후생연금보험법에 따라 당시 급여를 기준으로 계산한 금액”이라고 설명했다. 11년이나 지급이 늦은 이유도 “7명의 급여기록이 없어 과거 기록을 찾느라 시간이 걸렸다”고 해명했다.

어이없는 금액을 받아든 할머니들은 반발하고 있다. 광주광역시에 사는 양금석(78)씨는 “속아서 징용을 가 고생을 한 결과가 고작 99엔이냐”며 분노했다. 양씨는 초등학교 6학년 때 “일본에서 일하면 집을 살 수 있는 돈을 벌 수 있고, 학교도 다닐 수 있다”는 교사의 말에 속아 선배 23명과 일본으로 건너갔다. 공장 기숙사에서 살며 고된 노동을 했지만 급여는 한 번도 받지 못했다. 회사에 급여를 요구할 때마다 돌아온 건 “연금과 저금을 하고 있으니 안심하라”는 답변뿐이었다.

우쓰미 아이코(內海愛子) 와세다(早稻田)대 교수는 “전시 동원자들이 귀국할 때 줘야 하는 걸 방치해 뒀다 당시 금액대로 지급하는 것은 수령자 입장에선 납득할 수 없을 것”이라며 “내년 한국 강제병합 100년을 맞아 전후 처리와 관련된 여러 문제를 입법 등을 통해 해결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도쿄=박소영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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