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4회 삼성화재배 월드바둑마스터스] 후회의 시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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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19면

<본선 16강전>
○ 천야오예 9단 ● 최철한 9단

제13보(173~195)=거듭 말하지만 패싸움의 승패는 팻감이 말해 준다. 팻감이 떨어진다는 건 전쟁터에서 화살이 떨어지는 것과 똑같다. 그 뒤는 육탄으로 돌진하고 장렬히 옥쇄하는 것, 또는 항복만이 남게 된다.

173으로 둔 것은 대마 패를 결행하겠다는 뜻은 아니다. 팻감이 턱없이 부족한 상황이기에 금방 175로 물러서고 만다. 176으로 몰아 백 대마는 살아갔다. 최철한 9단은 초반부터 줄기차게 이 대마를 노렸으나 마지막은 매우 허망했다. 어디서, 어떤 전략이 빗나갔을까. 대마 공격 자체에 무모함이 있었다. 고집이 있었다. 최철한도 그걸 느낀다.

하지만 바둑은 무를 수 없는 것. 최철한은 씁쓸하게 속으로 웃는다. 왜 천야오예만 만나면 이성을 잃는 것일까. 네 살이나 밑인 천야오예의 침착함이 징그럽다. 참 기분 나쁜 상대다.

177로 좌변을 따내며 패싸움을 이어간다. 꿩도 매도 다 놓쳤지만 이 패는 흑보다는 백 쪽의 부담이 조금이라도 더 크다. 바둑도 좋은 백이 모험을 피한다면 꽤 성과를 거둘 수 있고 그 경우 계가의 희망도 아직 완전히 꺼진 것은 아니다. 그러나 천야오예는 물러설 뜻이 전혀 없는 듯 보인다. 줄기차게 패를 쓰며 버텨 온다. 최철한은 그만 던질까 생각한다. 올해 초 응씨배를 우승하며 최고의 해를 보냈으나 그 이후 어딘가 긴장이 풀려 버렸다. 그게 화근이었다(181=▲, 180·183·186·189·192·195=좌변 패 때림).

박치문 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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