린다김 재판 '돌발변수' 권기대씨 증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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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5면

"공직자로서 로비스트로부터 돈을 받은 것은 분명히 잘못된 일로 깊이 반성합니다. 그러나 린다 김은 고위 인사들이 관련된 커다란 불법 로비를 감추기 위해 나를 희생양으로 삼아 함정에 빠뜨렸습니다."

23일 오후 서울지법 523호 법정. 문민정부 시절 백두사업 실무 작업을 총괄했던 예비역 육군 준장 권기대(權起大.57)씨가 무기 거래 로비스트 린다 김의 뇌물공여 및 군사기밀 불법취득 혐의 재판이 진행 중인 이 법정에 증인으로 나왔다.

그는 린다 김으로부터 1천만원을 받은 혐의로 1998년 구속 기소돼 지난 9일 징역 10월.집행유예 1년이 확정됐으며, 최근 린다 김 재판부에 "린다 김의 뇌물공여 행태에 대해 증언할 용의가 있다" 는 탄원문을 제출, 재판부가 직권으로 증인 채택했다.

그는 "기무사가 나를 조사하면서 린다 김이 부하직원에게 '權장군에게 줄 1천만원을 준비하라' 고 지시하는 전화 내용을 담은 녹취록을 제시했다" 고 증언했다.

린다 김이 건넨 돈은 린다 김의 주장과 달리 단순한 선물이 아니라 자신을 함정에 빠뜨리기 위한 것이었으며, 의도적으로 전화 통화를 녹음한 뒤 기무사에 건넨 의혹이 짙다는 것이다.

검찰은 이에 대해 "지금으로서는 확인 못하겠다" 고 밝혔다.

權씨는 특히 "군 검찰 조사 당시 국방부 검찰부장이 '돈을 준 린다 김은 조사 한번 않고 權장군만 구속하는 것은 이해할 수 없다. 미국에 있는 린다 김에게 한국에 오지 말라고 신호하는 것밖에 더 되느냐' 고 말했다" 고 주장했다.

그는 "백두사업자로 선정된 미국 E시스템사가 당초 계약보다 성능이 떨어지는 장비 제작을 강행하려하는 데 반발, 수차례에 걸쳐 국방부에 사업중단을 건의했다" 고 린다 김이 돈을 건넬 당시 배경을 설명했다.

그는 미리 준비해온 메모를 살펴보면서 20여분 동안 또박또박 상세히 증언했다.

린다 김과 변호사는 물론 린다 김에 대한 수사를 제대로 하지 않았던 검찰도 곤혹스런 표정으로 權씨의 증언을 지켜보았다.

린다 김의 변호인은 그의 진술이 린다 김에게 불리한 쪽으로 진행될 때마다 증언을 제지하려 했으나 재판장은 權씨가 증언을 계속하도록 허용했다.

린다 김은 "왜 이런 오해가 생겼는지 모르겠다. 녹음테이프를 만들거나 權장군을 곤란하게 하려는 생각은 없었다" 고 해명했다.

權씨는 "공직자를 악의적으로 함정에 몰아넣은 뇌물 공여자를 엄벌해 불법적인 로비 행태를 단죄해 달라" 고 증언을 맺었으며, 재판장은 權씨에게 "사실 여부를 충분히 판단해 엄정히 판결하겠다" 고 답했다.

최재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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