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공의 정윤씨 "분통 터지지만 환자 떠날수 없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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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어떠한 이유와 명분으로도 환자를 떠날 수는 없습니다."

전국 1백여개 병원 전공의들이 집단 사직서를 제출하고 병원을 등진 20일 오전.

서울 강북 모병원 정형외과 레지던트 3년차 정윤(32)씨는 4백여 전공의 가운데 유일하게 남아 환자들 곁을 지켰다.

그는 "비록 의료계 현실을 무시한 정부 방침에는 분통이 터지지만 의사로서 기본 의무를 다하는 것이 의료개혁에 보탬이 된다고 판단했다" 고 말했다.

그는 힘든 결정을 내리기까지 며칠 밤을 고민했다. 유난히 위계질서가 강한 의사집단의 조직 논리를 거스르는 것도 힘들었고 동료들의 곱지 않은 시선도 부담스러웠다.

하지만 가족과 교수들의 성원이 큰 힘이 됐다. 鄭씨 아내는 19일 밤 옷가지를 챙기러 들어온 남편에게 "신념을 굽히지 마세요. 당신 결정을 믿어요" 라며 손을 꼭 잡아줬다.

어머니도 "환자들만 신경써라" 며 격려를 아끼지 않았다.

같은 병원의 인도주의실천의사협의회(인의협) 소속 교수들도 "소신껏 행동하라" 고 힘을 북돋워줬다.

한 간호사는 "鄭씨가 정말 어려운 결정을 내렸다. 우리 병원에 용기있는 의사가 있다는 게 너무 자랑스럽다" 고 말했다.

鄭씨는 1987년 '환자들의 고통을 함께 나누는 의사가 되겠다' 는 포부를 갖고 의대에 입학했다. 그해 대통령선거에서 부정개표 시비가 일었던 구로구청 사건에 연루돼 수감되기도 했다.

그는 "정부와 의료계가 빨리 합의점을 찾아 의사들이 환자들 곁으로 돌아오길 바란다" 고 말했다.

정용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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