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 남북시대] 2. 통일방안 합의 내용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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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남북한의 두 정상은 통일을 지향하는 과정에서 '외교권.국방권을 남북의 지방정부가 갖는 형태' 의 단계적 통일방안을 추진키로 합의함으로써 내외에 충격을 던져주고 있다.

남북한은 이제 1국2정부 남북연합의 출발점에 서게 됐다.

새로운 남북시대가 성큼 다가올 수 있는 역사적 전환점이 마련된 것이다.

이번 합의는 두 측면을 보여준다.

하나는 단계적 통일론에 합의했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과도적 단계에서 공존, 즉 상호간 체제를 인정했다는 것이다.

◇ 단계적 통일〓두 정상이 서명한 6.15 공동선언에는 "남측의 연합제안과 북측의 낮은 단계의 연방제안이 서로 공통성이 있다고 인정하고 앞으로 이 방향에서 통일을 지향시켜 나가기로 했다" 고 돼 있다.

여기에서 말하는 '연합제안' 은 김대중(金大中)대통령의 3단계 통일방안의 첫 단계인 '남북연합' 을 지칭한다고 할 수 있다.

이 방안은 金대통령의 집권 이전에 나온 것으로 '남북연합' 단계에선 두 개의 주권국가가 각자 모든 주권을 행사하면서 공존.교류.협력을 본격화하기 위해 당국간 채널을 가동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연합 정상회의와 국회격인 남북 연합회의를 운영하는 것을 상정하고 있다.

다음 '연방' 단계는 연방정부가 외교.군사.주요 내정의 권한을 갖고 지방정부는 일반 내정에 대한 자율성을 갖도록 돼 있다.

북측의 '낮은 단계의 연방제안' 도 이번에 처음 나온 것은 아니고 약간의 역사를 갖고 있다.

북측 방안의 기본입장은 1980년 10월 6차 당대회 이래 고려민주연방공화국 창립 방안이었다.

이 방안은 지금까지도 북에서 '조국통일 3대 헌장' 의 하나로 신성시되고 있다.

북측은 그러나 91년 김일성(金日成)주석의 신년사를 통해 단계적 연방제를 시사함으로써 변화를 보이기도 했다.

당시 金주석은 "잠정적으로는 연방공화국의 지역 자치정부에 더 많은 권한을 부여하며 장차로는 중앙정부의 기능을 더욱더 높여 나가는 방향에서 연방제 통일을 점차적으로 완성하는 문제도 협의할 용의가 있다" 고 제안했다.

연방제 방안 유지라는 면에선 변화가 없지만 과도적 단계를 설정한 점이 80년대 방식과 달랐다.

김정일(金正日)국방위원장은 바로 이같은 金주석의 제안을 계승하고 있는 것이다.

金주석의 대남 제의가 있은 뒤 그해 6월 1일 조평통 부위원장 한시해의 뉴욕 타임스 회견이나 8월 15일 범민련 북측본부 의장 윤기복의 발언에서도 같은 내용이 반복됐다.

그 뒤 북측 인사들은 해외에서 지역 자치정부에 주도록 한 '더 많은 권한' 은 외교권.국방권이라고 설명해 왔다.

이렇게 보면 단계적 통일론과 관련, 남과 북의 지방정부가 외교권.국방권을 갖도록 한다는 아이디어는 金대통령이나 金위원장에게 공통적으로 있었던 것으로 볼 수 있다.

金대통령은 집권 후 통일은 '먼 훗날의 일' 이라면서 통일방안 확정을 미뤄왔고 한반도 냉전구조 해체와 평화정착에 관심을 집중해 왔다.

그런데 예상을 뛰어넘어 갑작스럽게 북측과 통일방안에 합의했기 때문에 전문가들마저 놀라움을 금치 못하고 있다.

◇ 공존.체제 인정〓두 정상이 합의에 의한 통일에 합의함으로써 앞으로는 '흡수통일' 이나 '적화통일' 에 관한 우려가 없어졌다고 할 수 있다.

이것은 상호간에 무력을 사용하지 않을 것, 전쟁의 공포에서 벗어나기로 했다는 것과 맥을 같이 한다.

이로써 金대통령은 한반도 냉전구조 해체라는 필생의 구상을 실현할 기회를 맞이하게 됐다.

한편 金위원장은 그동안 여기저기에서 언급되던 '북한 붕괴론' 의 공포에서 벗어날 수 있게 된 것으로 보이고 경제회생에 전력할 수 있는 기회를 갖게 됐다고 할 수 있다.

두 정상은 민족의 운명을 건 윈-윈 게임을 성공적으로 마침으로써 공동 번영의 새 역사를 쓰게 된 것이다.

◇ 남은 문제〓두 정상이 통일방안에 원칙적으로 합의함에 따라 이제 구체적 방안을 협의해 확정하는 중대한 과제가 남아 있다.

현재로선 언제 협의에 들어갈지가 불투명하고 장기과제로 남게 될 여지도 있다.

그러나 일단 남북한 당국은 통일방안 구체화를 위한 실무협상팀을 만들게 될 것이라는 예상은 가능하다.

만일 협의가 시작된다면 연합(연방)정부와 지방정부의 형태.권한.운영방식 등 여러가지를 다루게 될 것이고 입장 차를 좁히는 데 많은 시간이 걸릴 것으로 예상된다.

끝으로 두 정상이 큰 차원에서 통일 문제를 논의할 개연성이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통일 방안을 구체적으로 합의할 것으로 예상한 국민은 거의 없었다.

따라서 金대통령은 정상회담의 경과를 국민에게 투명하게 설명하고 국회 동의 절차 등을 통해 국민적 합의를 끌어내는 과정을 갖게 될 것으로 예상된다.

유영구 북한문제전문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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