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 한 번의 화재로"…향일암 피해 왜 컸나

중앙일보

입력

'일출 명소' 여수 향일암에서 발생한 화재는 인적이 끊긴 시간대에 강한 바람을 타고 발생해 피해가 컸던 것으로 나타났다. 매서운 추위로 곳곳이 얼어붙은 것도 조기 진화에 걸림돌로 작용했다.

20일 소방 당국에 따르면 향일암에 불이 난 시각은 이날 자정 무렵. 신도들의 기도가 모두 끝나고, 사찰 관계자가 경내 순찰을 마친 지 채 1시간도 안 된 시점이었다.

인적이 끊긴 상태여서 불길은 뒤늦게 발견됐고, 새벽 0시24분께 119에 신고됐다. 그러나 불이 난 곳이 여수소방서 군내지역대로부터 15㎞, 돌산 119안전센터로부터 26㎞, 여수소방서로부터는 39㎞나 떨어져 있다보니 첫 소방차는 0시45분에야 가까스로 현장에 도착했다.

더욱이 사찰에 이르기전 1㎞ 구간은 소형 소방차만 진입이 가능할 정도로 비좁아 구급차는 접근조차 못했다. 초속 5-6m에 이르는 바닷바람도 화마(火魔)를 키우는데 일조했다. 엎친 데 덮친 격 기온마저 영하권을 맴돌면서 진압초기에 뿌려진 물이 곧바로 얼어 붙으면서 소방관들은 불길 잡기에 사투를 벌여야만 했다.

특히 잿더미로 변한 대웅전과 종각, 종무실 모두 가파른 바위 사이에 위치해 현장에 동원된 소방관과 경찰관, 시청 직원 등은 삽시간에 무너져내리는 기왓장에도 적잖은 위협을 느낄 수 밖에 없었다. 한밤중이라 헬기 투입도 쉽지 않았다.

진화작업에 나선 한 공무원은 "산 중턱이어서 접근이 쉽지 않았고, 매서운 바람에다 강추위로 바닥마저 결빙돼 진화에 도움주기조차 힘든 상황이었다"고 말했다.

각종 악재로 진화작업이 지연되는 사이 대웅전(51㎡), 종무실(27㎡), 종각(16.5㎡) 등 사찰 건물 8개동 가운데 3개동이 잿더미로 변했고 사찰을 휩쓴 화마는 5억9000만원 상당(소방서 추산)의 재산피해를 낸 뒤 3시간여만에 진화됐다.

국보 1호 숭례문 화재사건 후 문화재와 중요 사찰 보호 차원에서 일종의 스프링클러인 미분무 설비시설이 갖춰져 있긴 하나 불이 난 3곳에는 공교롭게도 설치돼 있지 않아 무용지물이나 다름 없었다.

옥외소화전도 설치돼 있지 않아 소방관들은 암자내 3.5톤짜리 자체 저수조와 동력펌프를 이용해 진화에 나섰으나 불길을 잡는데는 역부족이었다.

여수소방서 관계자는 "불이 난 건물이 모두 5-6m 간격으로 떨어져 있긴 하나 처마 길이 등은 감안하면 2-3m에 불과해 바람을 타고 순식간에 옮겨붙은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이어 "다행히 직원들의 신속한 조치로 산불로 번지거나 보존 가치가 상대적으로 높은 관음전 등으로 확산되는 것은 막아 천만다행"이라고 밝혔다.

한편 사찰 관계자는 "처음 불이 난 것으로 보이는 대웅전에 촛불이 꺼져 있었고, 관광객이 많아 24시간 개방되는 점에 비춰볼 때 누군가 외부인의 소행일 가능성이 크다"고 방화 가능성을 제기했다.

뉴시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