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정상회담]2차 단독회담 스케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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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14일 오후 6시50분 평양 백화원 영빈관. 김대중(金大中)대통령과 김정일(金正日)국방위원장이 환한 표정으로 회의실을 나왔다.

3시간5분의 마라톤 회담 끝에 4개항을 합의해낸 순간이었다.

오후 9시 두 사람은 합의문에 서명하는 역사적 장면을 연출했다. 남북 정상이 화해와 평화를 약속하는 순간이었다.

▶45분간 한차례 휴식.

회담은 오후 3시~5시20분, 오후 6시5분~6시50분 두차례에 걸쳐 진행됐다. 金위원장의 웅변조 얘기가 간간이 회담장 밖으로 흘러나왔다. 회담이 길어지자 주변에서 휴식을 권해 45분간 쉬었다가 다시 회담을 시작했다.

휴식에 들어가기 전 두 정상은 서울에서 팩스로 전송된 이 날짜 국내신문을 보고 "정상회담에 모두 관심이 많다" 며 마음을 다잡았다고 한다. 이 날은 모든 신문이 1면 통단제목과 대형 사진으로 두 정상의 만남을 대대적으로 보도했다. (중앙일보는 초판부터 두 정상의 상봉장면 사진을 1면 전면에 실었으며, 일부 신문이 시내판에서 이를 따라왔다)

▶남한신문 펴놓고 얘기꽃

金대통령은 "이 신문철을 드리겠다" 며 즉석에서 金위원장에게 선물했고, 金위원장은 "잘 챙기라" 고 수행원에게 전달.

회담은 오후 3시 金위원장이 金대통령의 숙소인 백화원 영빈관을 방문하면서 시작됐다.

만면에 미소를 띠고 1층 홀로 들어온 金위원장을 金대통령도 활짝 웃으며 맞았다. 두 사람은 전날 첫 상봉 때처럼 두 손을 마주 잡았다.

金위원장은 전날의 갈색 점퍼형 인민복 대신 공식 국가 행사에서 착용하는 회색 인민복 정장을 입었다. 회담이 공식적인 것임을 연출하는 의미인 셈이었다.

왼쪽 가슴에는 김일성 배지를 달았고, 안경도 전날의 갈색기운이 도는 엷은 선글라스 대신 맑은 금테안경을 썼다.

회담장도 당초 金위원장의 집무실로 예상됐으나 金위원장이 14일 새벽 영빈관으로 바꾸었다고 우리측의 한 관계자는 말했다.

"우리 민족은 동방예의지국으로, 젊은 金위원장이 가는 게 좋겠다는 뜻을 북측에서 전해 와 변경됐다" 는 설명이다.

두 정상은 영빈관 내 회의실에서 열린 단독회담에 앞서 5분간 공개대화를 나눴다.

특히 金위원장은 김치 얘기를 화제에 올리며 북한 김치가 국제사회에 제대로 알려지지 않은 데 대한 아쉬움을 표시했고 "한국식 김치" 라는 표현도 썼다. 우리 국호를 처음 사용한 셈.

金위원장은 특유의 거침없는 말투와 제스처로 분위기를 끌고가려 했고 金대통령은 차분하고 낮은 목소리로 응대했다.

金위원장은 "구라파 사람들이 나를 보고 은둔생활을 한다고 하는데 金대통령이 오셔서 은둔에서 해방됐다" 는 등 간간이 유머섞인 말을 해 좌중에 웃음이 터지기도 했다.

金위원장은 그러나 "남쪽 테레비를 통해 실향민과 탈북자를 소개하는 것을 많이 봤다" 며 金대통령이 큰 관심을 보인 이산가족 문제에 대해 먼저 얘기를 꺼내기도 했다.

공동취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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