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 정상회담] DJ 방북 감회와 각오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3면

평양행 D-3일인 9일 청와대 국무회의.

"민족에 대한 책임감, 남이 갈라놓은 분단 55년, 전쟁 그리고 긴장…. 그것을 우리 스스로 극복하고 민족사에 평화를 가져오도록 하자. " 김대중(金大中)대통령은 결연한 표정으로 남북 정상회담을 맞는 각오를 피력했다.

"金대통령에게 김정일(金正日)국방위원장과의 대좌는 자신이 30여년간 다듬어온 통일론의 거대한 실험" 이라고 9일 청와대 관계자는 설명했다. 金대통령 스스로 정상회담을 "신라통일의 시작과 같다" 고 표현한 적이 있다.

평양 정상회담은 1993년 북한 핵 위기 이후 미국에 넘겨줬던 한반도 상황 관리의 주도권을 일거에 되찾는 계기가 됐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때문에 "金대통령은 그만큼 혼신의 힘을 기울이고 있다" 고 이 관계자는 전했다.

전례가 없어 모든 게 생소하게 마련인 평양 정상회담. 그러나 金대통령은 "과거 옥중(80년)에서 남북문제의 여러 경우의 수를 놓고 김일성(金日成)전 주석과 장기를 두어 결국 이겼다" 는 자신감과 열정을 새롭게 보이고 있다.

金대통령은 김정일 위원장이 등장하는 각종 VTR 화면을 되감아가면서 '金위원장 연구' 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고 한다.

자정을 넘겨가며 金위원장의 스타일에 관한 보고서를 꼼꼼히 뒤적인다고 한다.

사진을 보면서 고구려유적지.평양 거리의 풍물도 익히고 있다. 광개토대왕 시대의 개막을 외쳤던 金대통령의 통일쪽 감수성을 자극하고 있다는 것.

그런 준비를 들어 정부 관계자는 "평양에서 金대통령의 발언과 움직임에는 한반도가 냉전(冷戰)과 진짜 거리를 두기 시작하는 강렬한 인상을 주는 대목이 있을 것" 이라고 예고했다.

그의 통일론은 평화공존-평화교류-평화통일의 3원칙.3단계다.

평양 정상회담은 그 출발이다. 여기에 실사구시(實事求是)의 정신으로 접근하고 있다고 한다. 金대통령이 김구(金九)선생을 평가해 온 부분에도 그런 대목이 있다.

"김구 선생이 38선을 넘어 북한에 다녀오신 것은 애국자로서 상징적이고 감상적인 행동이며 비장한 결심의 발로지만 현실을 움직이는 정치가 될 수 없었던 게 아쉬웠다" 는 것.

그가 말해온 "서생적(書生的)문제의식과 상인적 현실감각" 이 김정일과의 대좌 때 드러날 것이라는 게 청와대쪽의 예고다.

남북경협 확대.이산가족 상봉.한반도 평화선언.92년 남북 기본합의서 실천 문제를 단계적이면서 짜임새 있게 풀 것이라는 얘기다.

햇볕정책은 단순히 유화적인 북한 정책이 아니라는 주장이다. 金대통령은 정상회담에서 "진전이 있을 것" 이라고 자신하고 있다. 그러나 기대만큼 부담도 크다.

'김정일의 교묘한 구상에 넘어가지 않나' '과잉 의욕으로 실수가 있지 않을까' 하는 대목이다.

한나라당 이회창(李會昌)총재는 "대한민국의 정체성이나 안보를 위협하는 타협을 해선 안된다" 고 주장하고 있다.

특히 북한 핵.미사일 문제를 우선하는 미국의 이해와 충돌하고 있다는 관측은 사그러들지 않고 있다.

金대통령이 "한꺼번에 많은 것을 이루려고 하지 않겠다. 55년 만에 철조망을 넘어 북한에 가는 것 자체가 터닝 포인트" 라고 강조한 것은 이런 점을 의식한 측면이 있다.

그러면서 金대통령은 "무엇이 얼마만큼 합의되느냐도 중요하지만 만났다는 사실, 하고 싶은 얘기를 해서 서로가 무엇을 생각하고 있는지를 알게 되는 것 자체가 중요하다" 고 강조했다.

"동.서독 정상회담, 닉슨 대통령의 중국 방문 등 현대사의 여러 역사적인 정상외교가 꼭 성공적이었던 것은 아니지만 그 후 돌아보면 그 만남이 역사 발전에 엄청난 영향을 주었다" 며 시작이 절반이라는 점을 지적한다.

金대통령은 미국.일본.중국.러시아 등이 한반도 질서변화를 선점하려는 움직임을 적절하게 관리해 남북관계 변화를 주도할 작정이다.

그동안 미국과는 안보와 경협을 바탕으로 관계를 강화했고, 일본과는 성공적인 화해를 이룩했으며, 중국과 러시아의 대북한 영향력을 효과적으로 분산, 활용해 왔다는 평판을 들어왔다.

최훈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