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중국 부주석에게 국회 추태 보여주려 했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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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8면

지난해 국제적 망신거리가 된 ‘해머국회’가 벌어진 지 1년이 지난 어제 국회에선 또다시 난장판이 벌어졌다. 한 국가의 국민 대표라면 최소한 가져야 할 부끄러움도 팽개치고 여야 의원들이 또다시 육탄전을 벌인 것이다. 그것도 ‘국빈격’으로 한국을 방문 중인 시진핑 중국 국가 부주석이 국회를 방문했던 시각에 말이다. 나라의 격(格)은 아랑곳하지 않고 물리적 충돌만 반복하는 18대 국회의 무능과 오만에 오만정이 다 떨어진다.

이번 아수라장은 민주당 의원들이 기습적으로 국회 예산결산위원회(예결위) 회의장을 점거하면서 시작됐다. 4대 강 예산 삭감을 주장하며 예산 조정작업을 담당하는 계수조정소위원회를 구성하지 못하게 실력행사를 한 것이다. 그러자 한나라당 의원들이 들이닥쳐 삿대질과 고함을 지르면서 뒤엉킨 것이다.

무엇보다 예결위 회의장 밖에서 이런 한국 국회의 추한 모습을 전해들었을 시 부주석이 어떤 생각을 했을까 하는 대목에 이르면 얼굴이 화끈거린다. 중국 네티즌은 지난해 한국의 ‘해머국회’를 보고 “저렇게 하는 게 민주주의인가” 등 온갖 비아냥을 쏟아냈다. 이런 마당에 또다시 한국 국회가 추태를 부렸으니 중국 국민은 물론 전 세계로부터 지탄을 받을 게 틀림없다. 이 나라가 어디로 흘러갈지 정말 우려된다.

민주당의 예결위 점거는 민주적 절차를 파괴한다는 점에서 크게 잘못됐다. 여야 의원들이 합의한 의사절차를 외면하고 물리력으로 자기 주장을 관철하겠다는 것은 말이 안 된다. 특히 전체 예산의 2%에 불과한 내년 4대 강 예산을 걸어 전체 예산의 심의를 거부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어제 민주당 의총에서 한 의원은 “한나라당 주장대로 다른 예산부터 심의하면 4대 강 예산 심의가 졸속으로 이뤄질 수 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이는 타당성이 없는 비약이다. 어차피 예결위 통과는 한꺼번에 하게 돼 있다. 4대 강 문제가 자기 주장대로 안 되면 다른 나라살림은 모두 포기하겠다는 건가. 이런 정치적 명분 다툼에 민주당이 보호하려 하는 서민들의 살림에 주름살이 져도 괜찮다는 것인가. 사태가 이 지경에까지 온 데에는 한나라당도 일정 부분 책임이 있다. 4대 강 예산을 소관 상임위에서 기습적으로 처리하는 등 야당 설득에 매끄럽지 않은 모습을 보여왔기 때문이다.

여야는 하루빨리 이성을 찾아야 한다. ‘해머국회’ 이후 국민 앞에 잘못했다고 반성하던 여야가 눈 하나 까딱하지 않고 똑같은 행태를 반복한다면 어떻게 국민의 대표라고 할 수 있는가. 일부 여야 중진의원들이 정치적 절충을 요구하고 나선 것은 다행이다. 이들은 4대 강 사업은 살려나가되 대운하로 오해 받을 수 있는 사업은 합리적으로 조정하라고 절충방안을 제시했다. 여야 지도부는 이런 절충안을 토대로 협상에 임해 타협을 이뤄가는 슬기로움을 발휘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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