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인호씨 기고] "아름다운 서울에서 살으렵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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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패티 김은 노래하였다.

'종이 울리네. 꽃이 피네. 새들의 노래, 웃는 그 얼굴 그리워라. 내 사랑아 내 곁을 떠나지 마오….아름다운 서울에서, 서울에서 살으렵니다' . 그러나 노래의 가사 말처럼 서울은 아름다운가. 나는 지금 아름다운 서울에서 살고 있는가.

서울은 내가 태어난 고향. 그러나 내 고향 서울은 이방인들이 벌이는 살벌한 격전지가 되고 말았구나. 한때 선글라스를 쓴 군인 아저씨들이 탱크를 몰고 한강다리를 넘어온 이후부터 경상도 정권에 호남 푸대접이란 말이 유행이더니 이제 서울은 푸대접 아닌 무대접의 외인부대의 점령지가 되고 말았구나. 그래도 나는 아름다운 서울에서, 서울에서 살으렵니다.

다 어디 갔는가. 서울에서 태어나 서울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던 서울 깍쟁이들은 모두 어디로 갔는가. 내 어릴 때만 하여도 광화문의 숲에서는 뻐꾸기가 울고, 맑은 청계천에서는 빨래하는 아낙네들의 방망이 소리가 타악타악 들려오고 해질 무렵이면 화신 앞을 달려가는 전차의 바퀴가 레일과 부딪쳐서 푸른 섬광이 번득이곤 했었지. 한여름이면 한강으로 나아가 헤엄치고 자두를 먹으러 세검정으로 산보를 나갔었다.

그 시절 골목길에서 비석치기를 하던 동무들은 모두 어디로 갔는가. 그 뻐꾹새들의 노래는 어디로 사라지고, 자두나무의 꽃들은 어디로 사라졌는가.

그래도 나는 아름다운 서울에서, 서울에서 살으렵니다.

저녁이면 동양극장에 가서 임춘앵이 나오는 국극(國劇)을 보았다. 일찍이 과부가 되어 지방에서 올라온 하숙생들을 치는 것으로 우리 형제들을 키우던 우리 엄마의 유일한 낙은 동양극장에 가서 국극을 보던 일이었지. 엄마는 '장화홍련전' 을 보면서 눈이 붓도록 울었었지.

엄마를 따라 극장에 갈 때면 나는 정신없이 황홀했었지. 그 엄마가 지금은 한점의 뼈가 되어서 천주교 묘지에 묻혀 있는데, 아아 그 시네마 천국의 동양극장은 어디로 사라졌는가.

우리나라 최초의 연극 전용극장, 1935년 개관되어 한 세기 가까운 역사를 가진 우리나라 최초의 회전무대를 갖추었던 청춘좌(靑春座). 박진.이서구 같은 연출자에 김승호.유계선.한은진 같은 연극배우들을 낳은 극장. 그 동양극장이 하루아침에 무너져 버렸구나. 무너져서 대기업의 무슨 연수원, 또 다른 건물이 되어버렸구나.

그 뿐이랴. 태화관(泰和館)은 어디로 사라졌는가. 1919년 3.1운동 때 민족의 대표 33인이 모여서 독립선언문을 낭독하던 곳. 민족대표 한용운(韓龍雲)의 선창으로 '대한독립 만세' 를 부르짖던 역사의 현장, 그곳도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이제는 커다란 아스팔트 정글로 변하였구나.

소리 소문도 없이 을지로에 있던 국도극장도 허물어져 버렸구나. 내 소설 '별들의 고향' 의 경아가 눈물을 흘리던 곳. 아아 명동에 있던 유일한 우리들의 시공관(市公館). 해방 이후 '햄릿' 을 맡은 배우 김동원이 '죽느냐 사느냐, 그것이 문제로다' 를 독백하던 우리들의 카네기홀이 하루아침에 증권회사로 변해버렸구나. 난생 처음 70㎜ 대형 스크린으로 '벤허' 의 조국과 사랑, 그리고 신의 웅혼함을 보았던 대한극장도 곧 사라진다고 하는 구나.

그러면서도 우리는 문화를 이야기한다. 그러면서도 정신빠진 우리는 예술을 예찬한다.

아아,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아름다운 서울, 서울에서 살으렵니다.

지식인은 주장한다. 동강(東江)을 살려야 한다고. 시민운동가들은 동강으로 달려가고 상업주의에 미친 텔레비전도 제법 양심이 있는 척 동강을 예찬한다. 그러나 서울은 어디로 가고 있는가 동강을 마땅히 살려야 한다면 내 고향 서울도 마땅히 살려 내야 한다.

오래된 것은 낡은 것이 아니다. 오래된 사랑, 오래된 우정, 오래된 역사야말로 하루아침에 만들어 낼 수 있는 아이스크림이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항상 새 것, 새 것만을 찾고 있구나. 그리하여 바꿔, 바꿔, 모든 것을 다 바꿔. 오래된 마누라도 바꾸고, 오래된 친구도 바꾸고, 술집에 가서도 영계만을 찾고 있구나. 경박하기가 이를 데 없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아름다운 서울, 서울에서 살으렵니다.

일찍이 1394년 무학대사는 지금의 한양 땅을 서울로 정한 후 대궐을 지으려 하였으나 번번이 무너져서 상심하고 있었다. 그 무렵 무학이 어느 곳을 지나는데 한 노인이 밭을 갈면서 소를 나무라기를 "이랴. 이 무학이보다 미련한 놈의 소" 라고 하였다. 놀란 무학이 노인에게 그 까닭을 물었더니 노인은 이렇게 말하였다.

"한양 땅은 원래 학(鶴)의 땅인데 등에 무거운 짐을 실었으니 학이 날개를 칠 것이 아니야. 그러니까 궁궐이 무너지는 것이다. "

그 노인이 말하였던 대로 우리가 사는 고향, 서울은 학의 땅. 그 등에 무거운 짐을 실었으니 와우아파트가 무너지고, 삼풍백화점이 무너지고, 성수대교가 한꺼번에 와르르 무너지는 것이지.

우리의 서울을 학처럼 자유롭게 훨훨 날아다니게 하라. 시화호의 환경도 중요하고, 새만금의 환경도 중요하고, 동강의 환경도 중요하지만 그보다 더 중요하고 소중한 것은 우리가 살고 있는 바로 이곳, 서울이니.

내 고향 서울을 더 이상 죽여서는 안된다. 서울을 살려 내야 한다. 그리하여 나를 처음 만나서 사랑를 맺은 정다운 거리, 마음의 고향, 아름다운 서울에서, 서울에서 살게 해주오.

최인호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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