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의 현장] ‘경제의 교과서’ 노르웨이를 배우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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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지난 10일(현지시간) 노벨평화상을 받은 노르웨이 오슬로 시청을 그 며칠 전 지나칠 일이 있었다. 세계인의 이목이 집중될 행사를 불과 닷새 앞둔 5일, 시청 입구와 광장엔 개·보수 공사가 한창이었다. 북구의 찬 겨울비가 부슬부슬 내리는 가운데, 흩어진 건축자재 사이로 두어 명 근로자가 작업하는 모습은 을씨년스럽기 짝이 없었다. ‘서울시청에서 국제행사가 열렸다면 저랬을까’ 은근히 걱정스럽기까지 했다.

오늘날 노르웨이 사람은 ‘바이킹의 후예’답지 않게 느긋하고 느리다는 평을 자주 듣는다. 적어도 비즈니스를 해 본 우리나라 사람들 이야기는 그렇다. 이달 초순 노르웨이 전역을 며칠간 돌아보고 ‘그럴 만도 하겠구나’ 하는 느낌이 들었다. ‘뭐든 풍족한 나라니 아등바등 살 필요가 없겠다’ 싶었다.

노르웨이는 국토 전체가 천혜의 명승지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빙하의 침식으로 1000㎞ 넘게 형성된 서해안 피오르는 한 해 수백만 명 외국인 관광객을 끄는 달러 박스다. 세계적 어장인 로포텐 제도를 비롯해 웬만한 바닷가에 둥그런 철제 그물을 턱 쳐 놓으면 양식이 된다. 새끼 연어를 쏟아부으면 2년도 안 돼 수십만 마리의 싱싱한 성어가 펄떡거린다.

1970년대에 발견된 막대한 해저 유전은 이 나라를 세계 5대 석유 수출국에 올려놓았다. 해운·조선업과 정보기술(IT)·디자인 같은 하드·소프트 산업들도 골고루 받쳐준다. 남한의 네 배 가까운 국토(38.5만㎢)에 인구는 10분의 1이 안 되니(480만 명), 우리처럼 치열하게 생존경쟁에 뛰어들 필요가 없다. 6만 달러대의 1인당 국민소득과 사회보장제도 모두 세계 최고 수준이다. 유엔 인간개발지수·양성평등지수·행복지수 같은 삶의 질 척도에서도 수위를 다툴 수밖에 없다.

그렇다고 좋은 땅을 물려받은 덕분이라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넉넉한 생활환경에서 형성된 느긋한 국민성이 무리하지 않는 국가 경영으로 이어졌다. 노르웨이는 유럽연합(EU)에 가입하지 않은 몇 안 되는 나라의 하나다. 1994년 국민투표에서 EU 가입을 부결시켰다. 고립의 우려에도 불구하고 이는 때마다 빛을 발했다. 비근한 예로 2년간의 세계 금융위기 속에서 안정 속의 성장을 지켜냈다. 달러·유로·엔 3대 통화가 흔들리는 와중에 노르웨이의 크로네는 끄떡없었다. 지난해엔 3%의 경제 성장까지 했다. 쏟아져 들어오는 오일달러를 국내에 들여다 쓰지 않고 대부분 해외 국부펀드 등에 투자했다. 석유로 부자가 된 영국이나 두바이·베네수엘라처럼 ‘자원 부국의 저주’나 ‘흥청망청의 덫’에 빠지지 않고 후손을 위해 저축한 것. ‘노르웨이는 경제의 교과서’(뉴욕 타임스)라는 평가가 과언이 아니다.

‘빨리빨리’는 분명 한국인의 장점이다. 경쟁과 개방·수출도 우리의 살길이다. 하지만 부족한 부분을 메울 분배와 평등의 정신, 느림의 미학을 노르웨이에서 배울 수 있지 않을까. 사족이지만 노르웨이가 마냥 느리기만 한 건 아니다. 지난 10월 유럽에서 처음으로 금리 인상을 해 ‘출구전략’에 재빠른 시동을 건 곳이 바로 노르웨이다.

오슬로=홍승일 IT·미디어데스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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