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사성어로 읽는 중국사 이야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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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종영한 한 인기 드라마에서 여주인공이 무식함을 드러내는 황당한 어록으로 화제에 올랐다. “원래 잘난 사람은 튀게 돼 있어. 군대일학(군계일학)이라고 하잖아.” “언젠가 좋은 날 오겠죠. 인생사 다홍치마(새옹지마)라는데.” 등 심각한 상황에서 천연덕스럽게 말실수를 연발하는 주인공을 보면서 많은 사람들이 즐거워했다. 이처럼 일상 대화에서 익숙하게 쓰이는 고사성어는 중국의 역사와 고전등에서 나온 말이 대부분이라 사람들은 흔히 관용구처럼 쓰면서도 그 유래나 정확한 뜻에 대해서는 모르는 경우가 많다.

『고사성어로 읽는 중국사 이야기』(이나미 리쓰코 지음, 민음 in 펴냄)를 통해 우리가 자주 쓰는 고사성어와 그 유래에 대해 알아보고 중국의 역사도 함께 익혀 보자. 기원전 6세기 말에서 5세기 초에 이르는 중국의 춘추시대 말기, 오나라와 월나라는 뿌리 깊은 원한과 오랜 복수전으로 역사에 이름을 남겼다.

기원전 496년 오나라의 합려는 월나라 구천과의 전쟁에서 패배한 뒤 아들 부차에게 “월나라에 진 이 빚을 절대 잊지 마라”는 유언을 남기고 죽었다. 부차는 날마다 불편한 섶 위에서 잠을 자며(와신(臥薪)) 월나라를 향한 원한을 불태웠다. 그리고 참모인 오자서의 도움을 받아 기원전 494년 마침내 월나라를 격파하고 대승해 아버지의 유언을 지켰다. 참패 후 간신히 멸망을 피한 월나라 구천은 이후 쓰디쓴 쓸개를 씹으면서(상담(嘗膽)) 패배의 굴욕을 되새기고 부차에 대한 복수를 키웠다. 오나라와 월나라의 싸움을 상징하는 단어인 와신상담(臥薪嘗膽)은 이후, 미래의 재기를 기약하며 현재의 고통을 참고 견딘다는 의미로 널리 쓰이게 됐다.

범려와 함께 오나라에 설욕할 날을 준비해 온 구천은 여색을 좋아하는 부차를 농락할 만한 월나라 최고의 미녀 서시를 오나라로 들여보냈다. 구천의 계략대로 절세미인 서시를 본 오나라 부차는 한눈에 그녀에게 빠져 판단력이 흐려졌다. 그 결과 부차는 이런저런 쓴 소리를 해 대는 명참모 오자서를 꺼리게 됐고 결국 오자서는 자살한다. 비밀리에 복수의 기회를 노리고 있던 구천은 부차를 궁지로 몰아갔고 기원전 473년 구천에게 성을 포위당한 부차는 끝내 자살하고 말았다.

이렇게 오나라는 멸망하고, 20년 넘게 지속된 두 나라 간의 싸움도 막을 내렸다. 후세에 사이가 나쁜 사람들이 공통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서로 손잡는 일을 오월동주(吳越同舟)라 부르게 되었지만 실제로 두 나라는 ‘동주’ 곧 같은 배를 타기는커녕 한쪽이 완전히 멸망할 때까지 싸움을 그치지 않았다.

구천이 부차에게 승리할 수 있었던 것은 무엇보다도 명참모 범려의 도움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뜻밖에도 공을 세운 범려는 오나라와의 전쟁이 끝난 직후 몰래 구천 곁을 떠나 국외로 탈출했다. 오자서의 예에서도 알 수 있듯이 목적을 달성한 권력자는 대부분 그 과정에서 큰 공을 세운 유력한 중신을 제거하기 일쑤다. 범려는 그런 위험을 예견하고 재빨리 몸을 숨겼던 것이다. 범려는 떠나면서 “교활한 토끼가 죽으면 충실한 사냥개는 삶아 먹힌다”라는 명언을 남겼다. 적이 없어지면 공로를 세운 신하는 오히려 방해가 되기 때문에 죽임을 당한다는 뜻이다.

이것의 줄임말인 토사구팽(兎死狗烹)은 오늘날 보다 일반적인 의미로 어떤 사람을 필요할 때만 이용하고 쓸모 없어지면 야박하게 버리는 경우를 이를 때 쓰인다. 이처럼 고사성어는 단순한 관용구를 넘어 역사를 담고 있다. 또한 역사를 넘어 오늘날에도 가르침을 주고 있기에 여전히 생명력을 갖는다고 할 수 있다.

[자료제공= 민음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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