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시험대 오른 이회창 총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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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이회창(李會昌)한나라당 총재가 그제 열린 전당대회에서 임기 2년의 당총재로 재선출됐다.

그는 총재직 수락연설을 통해 "국민이 원하는 리더십으로 정권을 되찾겠다" 고 다짐했다. 그러나 이런 식의 강한 집권의지는 당내 행사에서는 통할지 몰라도 일반 유권자의 정서와는 거리가 있다고 본다.

한나라당과 李총재는 그 이전에 행동으로 국민 앞에 보여줘야 할 몇 가지 과제가 있다.

李총재가 재작년 8월 총재직에 복귀한 이후 지금까지 한나라당은 '피해의식' 과 '반사이익' 을 주무기로 삼았다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니다.

탄압에 맞서 살아남는 게 급하다' 는 변명 아래 방탄국회를 일삼았고, 그러면서도 여권의 잇따른 실정(失政)에 대한 반발심리와 영남권 중심의 반(反)DJ정서에 힘입어 지난 총선에서 원내 제1당에 올랐다.

따라서 앞으로는 남의 실수나 지역주의 따위에 기대지 말고, 최다의석을 보유한 야당 총재답게 민생.정책국회를 앞장서 이끄는 성숙한 모습을 보일 필요가 있다.

1인 보스정치와 지역당으로 대표되는 구태(舊態)정치 청산도 중요한 과제다.

李총재 본인도 지난 총선 공천과정 등에서 사당(私黨)을 지향한다는 비판을 받은 바 있다.

한나라당 지역구의원 중 57%가 영남 출신이며, 그제 새로 구성된 부총재단도 11명 중 7명이 그 지역 인물이다.

과감한 당내 민주화 조치와 함께 지역주의 타파를 위한 실질적 방안을 강구해야 한다.

현재 민주당.자민련 공조가 복원 중이고 원(院)구성 문제, 총리서리 청문회, 남북 정상회담 등 중요 현안들이 산적해 있다.

李총재로서는 본격적인 시험대에 오른 셈이다. 국민은 그와 한나라당이 막중한 책임에 걸맞게 행동하는지 지켜볼 것이다. 정부.여당을 적절히 견제하면서도 사안에 따라 협조를 아끼지 않는 자세가 바람직하다.

평소 李총재는 3金정치의 청산을 주창해 왔다. 낡은 정치방식을 비판만 할 게 아니라 이제 새로운 이회창식 정치모델을 스스로 제시할 때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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