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년대 북한 생활상 담은 '레셀의…' 출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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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7면

남북 교류가 간헐적으로 이뤄지기 시작한 1990년대 이후의 북한 사진은 심심치않게 볼 수 있다.

하지만 전쟁 직후 폐허가 된 북한땅이라든가 당시 북한 주민의 생활상이 어땠는지를 말해주는 사진을 볼 기회는 지금까지 거의 없었다. 우리의 시야에서 철저하게 벗어나 있던 시기였기 때문이다.

이 공백기를 채워주는 귀중한 사진자료를 담은 책이 발간됐다. 56~57년 북한의 전쟁피해 복구사업에 참여했던 동독의 건축설계사 에리히 로베르트 레셀(1919~75)이 찍은 사진 2백50장을 엮은 '동독 도편수:레셀의 북한 추억' (백승종 글.효형출판.1만5천원)이다.

이 책은 레셀이 56년 12월 1일 동독 공산당으로부터 '북한건설단' 에 배속됐다는 통고를 받고 엿새만에 함흥으로 떠나 북한에 도착하면서부터 다시 동독으로 돌아올 때까지 목격한 장면들을 담고 있다.

레셀은 1년동안 카메라 두대로 필름 82통 분량의 사진을 찍었다. 작업현장을 떠나 교외로 소풍을 갈 때마다 일일이 북한 당국의 허가를 받아야 하는 등 절차가 번거로웠지만 레셀은 열심히 북한 전역을 돌아다녔다.

열흘에 두 통쯤의 필름을 썼다. 이렇게 찍은 사진은 컬러 80여장을 포함해 3천5백여장이나 남아 있다.

서강대 백승종(사학과)교수와 레셀의 유족들이 합의해 보관 상태가 좋은 사진 7백여장을 추려내고, 다시 내용면에서 주목되는 사진 2백50장을 추려서 백교수가 사진설명을 붙여 책으로 만들었다.

이 책은 크게 네가지 주제로 나뉘어 있다. 첫째는 레셀이 매료당한 개성 등 북한의 아름다운 자연과 그 속에서 살아가는 북한 사람들의 모습이다.

둘째는 살아 숨쉬고 있던 전통의 뿌리이고, 셋째는 전쟁으로 피폐한 모습이다. 마지막은 김일성 체제의 확립을 보여주는 사진들이다.

레셀은 북한에서 돌아온지 15개월만인 59년 서독으로 탈출했다. 모교인 바이마르 건축전문대학 부교수라는 사회적 지위와 명예를 버리고 자유를 택했다.

그렇지만 서독에서도 여전히 완전한 자유는 주어지지 않았다. 미국 정보기관원이 북한에서의 일을 심문하며 북한인들과 주고받은 편지와 문건 등을 압수한 것이다.

하지만 레셀은 북한에서 찍은 사진만큼은 철저하게 숨겨 압수당하지 않았다. 레셀 사후부터 지금까지 이 사진을 보관해온 레셀의 자녀들은 "아버지가 평생 이 필름들을 환등기로 돌려보며 북한에서의 추억을 늘 되새겼다" 고 밝혔다.

한편 북한의 현대건축을 담은 '북한 건축, 또 하나의 우리 모습' (이왕기 지음.서울포럼)도 발간돼 과거와 현대를 비교해 볼 만하다.

안혜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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