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혜경의 행복한 책읽기] '로마문학기행'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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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7면

마리온 기벨의 '로마문학기행' (박종대 옮김.백의)은 로마의 유적지 속에 배어있는 문학의 숨결을 따라가는 일종의 테마여행 안내서다.

이 책은 배낭을 메고 떠나는 실제 여행보다 더 깊고 풍요한 로마 여행의 세계로 우리를 안내한다.

이 책이 안내하는 여행지마다 우리는 문학이라는 이름으로 로마를 빛낸 위대한 시인들과 만난다.카툴루스.키케로.베르길리우스.호라티우스.오비디우스 등 로마의 한 시대를 풍미했던 시인들과 동행하며 흥미진진한 로마의 역사와 그 속에서 로마인들이 겪었던 사랑과 고뇌, 욕망과 좌절 등의 생생한 삶의 내면을 체험하게 된다.

로마와 우리 사이에 가로놓인 그 엄청난 시간적 거리를 뛰어넘으며 이름으로만 알고 있던 시인들이 문득 우리 앞에 살아있는 인간의 모습으로 다가오는 듯한 상상적 체험은 무엇보다도 쏠쏠한 재미이다.

가장 인상적인 것은 로마 시대의 문학, 혹은 문학인들이 차지했던 막강한 사회적 위상이다.

로마의 시인들은 대개 황제의 최측근에 있거나 로마의 권력자들과 교류하며, 로마의 역사와 영욕을 함께 했다.

이를테면 베르길리우스는 안토니우스와의 전쟁에서 이기고 돌아오는 옥타비아누스에게 새로운 시대의 지도자의 모습을 그린 시를 낭송해 옥타비아누스가 아우구스티누스 황제로 거듭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

세네카는 네로 황제를 통해 자신의 정치적 이상을 실현하려다 죽임을 당한다. 뿐만 아니라 아우구스티누스나 아우렐리우스 같은 황제들 자신 또한 뛰어난 문학적, 혹은 철학적 저술들을 남기고 있지 않은가.

이 당시 문학이 재정적 후견인의 원조 아래 놓여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로마의 시인들이 정치권력에 굴복하기보다 정치권력에 대한 중요한 비판세력으로 자리잡을 수 있었던 것은 그들이 추구했던 자유와 인간 정신의 고귀함 때문이었을 것이다.

이런 점에서 이 책에서 가장 흥미를 끄는 인물 가운데 한 사람은 유베날리스이다.

로마 시대 풍자문학의 대가인 유베날리스는 서민계층의 입장에 서서 로마 지배계층의 허위와 부패에 대한 신랄한 비판의 칼날을 휘둘렀던 사람이다.

기독교 문화가 정착하면서 격동하는 정치적, 사회적 삶의 한가운데에 있었던 로마의 문학은 내면의 세계 속에서 구원의 빛을 발견하려는 깊은 명상의 태도를 취하게 된다.

스토아 학파의 영향 아래 내면의 세계 속으로 침잠하면서 정신의 진정한 평화를 갈구하는 아우렐리우스의 '명상록' 은 인간의 나약함과 어리석음을 견디면서 정신의 극점에서 빛나는 저 신성(神性)의 불꽃을 찾아가는 고통스러운, 그러나 겸허한 철학적 자기성찰의 가장 모범적인 선례를 보여준다.

박혜경 <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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