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부는 아름답다] 5·끝. 찾아보면 길은 많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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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8면

"애 키우고 집안살림 할 줄만 알던 내가 대체 뭘 할 수 있을까. " 속단은 말자. 주변을 둘러보면 길은 많다.

아줌마 특유의 뚝심과 섬세함으로 일을 벌이고 적절한 곳에서 도움을 받는다면 멀게만 느껴졌던 창업이나 부업도 의외로 가깝다. 일단 일을 벌이고 볼 일이다. 특히 남편이나 아이들이 적극적으로 뒷받침해준다면 주부는 천만 원군을 얻은 거나 다름없다.

이영경(37.서울 서초구 반포동)씨는 평범한 주부에서 사업체를 3개나 가지고 있는 '사장님' 으로 변신한 경우.

1997년 L컴퓨터교실 지사장으로 시작해 지난해 12월 두번째 사업체인 자격증전문 컴퓨터 학원을 차린데 이어 지난 3월엔 동대문 의류를 파는 패션전문 사이트 '땡큐(http://www.thanq.co.kr)' 까지 오픈했다.

남편이 집을 담보로 5천만원을 마련하는 등 적극 나서줬다.

"아이들이 자꾸 커가는데 집에만 있으면 당신만 외로워진다. 당신이 13년 동안 집에서 모은 재산이니 당신이 하고 싶은 일 하는데 써야 하지 않겠느냐" 는 당시 남편의 격려가 눈물이 날 만큼 고마웠다.

"처음엔 집 잡힌 5천만원을 잃을까봐 밤잠도 못 이룰 정도였는데, 까짓것 밀어주는 남편도 있고 나이도 젊은데 무얼 못하랴 싶었어요. "

李씨가 자신있게 사회생활에 나설 수 있었던 이유다. 李씨는 " '주부가 밖에 나가 한달에 얼마나 벌 수 있을까' 라고 생각하는 주부들이 많겠지만 일단 첫발을 내디디면 만만치 않은 수입에 놀라는 경우도 있다" 고 말했다.

PC통신 '넷츠고' 에서 최근 20~50대 주부 5백17명을 대상으로 한 조사에 따르면 전체 응답자의 73%가 자신의 경제력 확보나 자기계발을 위해 사회활동을 원하고 있다고 답했다.

특히 살림에 보탬을 주기 위해 나서는 응답자는 15%에 불과해 주부들의 사회활동이나 창업.취업 동기가 기존의 가치관에서 크게 달라진 것으로 나타났다.

박미향(32)씨는 자본금 한푼없이 아파트 관리소 3층에 아이들이 와서 놀 수 있는 실내 놀이터 '플레이 스쿨' 을 차렸다.

한국여성경제인협회의 저소득 여성 생계형 창업지원 프로그램에 응모, 임대 보증금 2천만원을 지원받을 수 있게 된 것.

일곱살 희정이를 키우면서 가정에 실질적으로 보탬이 되는 일을 찾다보니 실내 놀이터라는 업종을 생각하게 됐다. 하지만 경제적 여력이 없어 체인점 가입은 꿈도 못꾸는 처지였다.

도서관 자료실과 서점을 뒤지고 어린이 놀이기구를 만드는 공장에 직접 찾아다니며 놀이기구를 구입해 실내 놀이터를 혼자 만들었다. 발로 뛴 사업계획서를 내니 여성경제인협회에서도 '성공 가능성이 크다' 며 채택해줬다.

朴씨는 "구청에서 처음엔 공동주택 관리법 위반이라 오픈할 수 없다고 했지만 법전을 뒤져 해당이 안된다는 사실을 찾아냈다" 며 "관공서 같은 곳에서 막무가내로 우기지 않고 자료를 뒤져가며 준비를 하는 등 성실한 모습을 보여주는 게 중요하다" 고 조언했다.

인터넷 시대의 도래는 여성들에게 더욱 많은 기회를 주고 있다. 적은 자본으로 재택근무를 하면서 실생활에 유용한 정보를 지닌 여성들이 창업할 수 있는 여지가 더욱 늘어난 것.

실제 중소기업청 산하 전국의 여성창업보육센터에 입주한 44개 업체 중 인터넷 관련 업체는 43%에 달한다.

컴맹주부에서 인터넷 사이트 산타플라워(http://www.santaflower.co.kr)사장이 된 정규은(29)씨는 " '아줌마는 당연히 무식하다' 고 여기잖아요? 그러니 모르는 것도 당당하게 확실히 알 때까지 물어볼 수 있죠" 라고 호기있게 말한다.

원래 갖고 있던 취미나 관심을 사업으로 넓힌 경우도 성공 가능성이 보인다. '매니어' 의 노하우는 현대 사회에서 중요한 자산이기 때문.

엄마와 아이가 함께 하는 생활공예 사이트 '맘키드(http://www.momkid.co.kr)' 를 오픈한 김명효(43)주부나 국내 최초의 인터넷 떡 판매 사이트 '와우복떡(http://www.wowbokduk.co.kr)' 을 연 문혜숙(38)주부는 관심 분야를 인터넷 사업과 연결시킨 좋은 예다.

여성창업전문사이트 사비즈(http://www.sabiz.co.kr)의 김희정 사장은 "여성들은 감성과 직관력이 뛰어나고 사고방식이 유연해 인터넷 사업이 안성맞춤" 이라며 "목표와 동기가 분명하다면 '힘들면 돌아갈 가정이 있다' 는 생각을 갖고 추진하라" 고 조언했다.

특별취재팀〓고종관.유지상.최지영.박혜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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