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곡 '비목'의 고장 화천에 남아있는 6·25상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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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7면

1964년. 강원도 화천군 백암산의 휴전선 부근을 순찰하던 한명희(당시 25세.현 서울시립대 음악학과 교수) 소위는 허물어진 돌무덤 하나를 발견했다.

6.25때 숨진 어느 무명 용사의 무덤인 듯 옆에는 녹슨 철모가 딩굴고 있었고 무덤 머리의 십자가 비목(碑木)은 썩어 금세라도 무너질 듯했다.

4년 뒤 당시 동양방송(TBC) PD로 일하던 한씨에게 평소 알고 지내던 작곡가가 가곡에 쓸 가사 하나를 지어 달라고 부탁했다. 돌무덤과 비목의 잔상이 가슴 속에 맺혀 있던 한씨는 즉시 펜을 들고 가사를 써 내려갔다.

'초연(硝煙)이 쓸고 간 깊은 계곡 양지녘에/비바람 긴 세월로 이름 모를 비목이여…. '

가곡 '비목' 의 고향인 강원도 화천군에는 전쟁과 분단의 흔적들이 아직도 이곳저곳에 서려 있다.

6.25 당시 화천댐을 놓고 벌인 치열한 공방전으로 붉게 물들었던 파로호는 지금 봄이 녹아들어 푸르기 그지 없고, 군사 정권 시절 댐 건설의 필요성을 놓고 논란이 일었던 평화의 댐은 민통선 바로 앞에 우두커니 서 있다. 댐 옆에는 가곡 '비목' 의 탄생을 기념하는 비목공원이 들어섰다.

파로호는 호수 모양이 전설의 새 대붕(大鵬)을 닮았다고 해서 원 이름은 대붕호였다.

그러던 것이 51년 화천댐 공방전에서 국군이 중국군 3개사단을 물리치고 대승을 거두자 당시 이승만 대통령이 '적을 격파하고 포로를 많이 잡았다' 는 뜻으로 '파로호(破虜湖)' 라 이름 지었다.

파로호 경치가 한눈에 들어오는 전망대는 화천읍에서 평화의 댐으로 가는 460번 지방도 오른쪽에 있다. 파로호 휴게소에 차를 대고 5분 정도 걸어올라가야 한다.

비목공원은 1998년 가곡 '비목' 을 기념해 만들었다. 산비탈에 돌로 한반도 모양의 단을 쌓았고 곳곳에 돌무덤과 비목을 세웠다.

해질녘 길게 드리워진 비목의 그림자를 바라보노라면 '비목' 작사자의 심정이 가슴에 와 닿는다.

평화의 댐으로 가는 길에도 경치 좋은 곳이 있다. 해산 일대로 해산터널 평화의 댐쪽 출구에서 3.5㎞ 떨어진 곳에 경치를 굽어볼 수 있는 전망대가 있다.

거기서 아래를 내려다보면 산자락이 마치 톱니바퀴처럼 맞물렸고 그 사이로 북한강이 흐른다. 해산은 근래 호랑이 발자국이 발견됐다고 해서 주목을 끌었다.

6월3~6일에는 비목공원과 화천읍 붕어섬에서 비목문화제가 열린다. 붕어섬에서는 매일 점심 때 피난 식량이었던 주먹밥.보리개떡 먹기 체험 행사가 있고 매일 오후 7시부터 전쟁영화를 상영한다.

비목공원에서는 6일 오후 3시30분부터 호국 영령을 추모하는 공연이 있다.

문의 비목추진위원회 0363-440-2225~6.

화천〓권혁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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