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예술에 비친 북한사회] 4. 관료주의 비판-영화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4면

북한사회의 생산성을 떨어뜨리는 가장 큰 원인은 관료주의의 문제다.

혁명적 열정이나 민중에 대한 애정 없이 개인적 보신과 자기 가족만의 안위를 먼저 생각하는 관료들의 모습이 북한 문화예술의 여러 분야에서 자주 등장하는 것은 이런 현실의 반영이다.

이런 관료주의적 병폐의 양상은 북한사회가 정체되면서 점차 심각해지고 있는 것으로 분석된다.

당의 교시와 지도자의 가르침이 지극히 원활하게 각 부문에 전달되고 있는 것처럼 강조하지만 심각한 '피로 현상' 은 그림자처럼 드러난다.

'고향땅' (장길현 연출, 90년)은 나태한 관료주의와 이기주의에 젖은 북한 사회를 비판한다. 농촌경리 도위원회 간부로 있던 서준호는 휴가 차 고향에 왔다가 농장관리인들이 땅을 제대로 가꾸지 않아 황폐화되는 것을 목격하고 걱정이 앞선다.

농장 관리책임자는 책임감도 없이 적당히 눈가림만 하려 든다. 책임자가 그러니 농장 일꾼들도 경작지에 함부로 목장을 지으며 잇속만 챙기려 든다. 서준호는 만사를 젖히고 이를 바로 잡는 일에 나선다.

나태와 이기에 흔들리는 인물과 이를 비판하여 새로운 각오로 사회주의 농촌건설에 앞장서는 인물의 대조해 보임으로써 교훈을 준다는 취지의 영화다. 그 과정에서 나태해진 관료의 자세가 심각한 문제임이 드러나고 있다.

'심장에 남는 사람' (고학림 연출, 90년)의 제1부 '언약' 편은 형식적 관료주의의 팽배를 더욱 직설적으로 질타한다.

초급 당비서인 주인공은 타이어 공장에서 일하면서 조직 전체가 관료주의적 타성에 젖어 사업의 효율은 물론 제품의 품질도 형편없이 저하하는 것을 목격하고 분노한다. 고급 간부들은 의욕이나 책임감도 없이 수년째 똑같은 결정만 반복할 뿐이다.

문제점들을 점검하고 개선하려는 적극적'이고 능동적'인 모습을 찾기 힘든다. 주인공은 이들에게 탁상행정의 폐해와 문제점을 제기하면서 당의 결정을 어떻게 집행하며 생산현장과 연결해야 하는지를 역설한다.

북한사회에서 구조적 비효율성이 얼마나 널리 퍼져있는가를 주인공의 입을 빌려 여실히 보여주는 사례다.

'주인된 마음' (고학림 연출, 97년)의 주인공 최학민의 모습은 관료주의의 문제점을 극복하기위해 새롭게 제시한 '바람직한 인물상' 이다.

주인공은 나태했던 지난 날의 과오를 스스로 반성하면서 "매사에 주인의식을 갖고 최선을 다하겠다" 고 다짐한다.

조희문 <상명대교수>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