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lose-up] 김종훈 통상교섭본부장 “한·미FTA, 한국 먼저 비준하는 건 부적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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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7면

김종훈 통상교섭본부장은 수출과 내수를 동시에 균형 있게 정책적으로 살리는 데 FTA만 한 정책 수단이 없다고 강조했다. [박종근 기자]

김종훈 통상교섭본부장과의 인터뷰는 11일 외교통상부 9층 본부장 접견실에서 1시간30분 동안 진행됐다. 소파 옆 책장에 8권으로 된 『참여정부 국정운영 백서』가 눈에 띄었다. 지난 정부 막판에 국정홍보처가 펴낸 책이다. 기자에겐 노무현 정부 때 본격적으로 시작한 자유무역협정(FTA) 등 통상정책이 이 정부에서도 계속 이어지고 있음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것 같았다.

-두 정부에서 모두 일해보니 어떤가.

“지난 정부에선 사실 아쉬운 부분이 있다. 조지 W 부시 정부와의 한·미 FTA 타결 직후 발효할 수 있는 기회가 분명히 있었다. 쇠고기 문제가 제대로 안 풀리면서 그 기회를 살리지 못했다. 어떤 정부든 통상 문제도 경제 문제지만 결국 국민의 뜻이고, 그게 승인되려면 국민의 대표기관인 국회로 가야 하고, 국회는 정치를 하는 집단이다. 거기로 가면 본안의 내용보다 정치적인 판단이 좌지우지한다. 피할 수 없는 운명이다. 다른 나라도 마찬가지다. 그걸 지난 정권의 흠으로 얘기하는 건 이런 측면에서 적절치 않다. 지금 정부는 확실하게 뜻을 갖고 있다. 정부 초기에 하고 가는 게 맞다고 판단해 쇠고기에 덤벼들었다가 정권 차원에서 상처를 받았다. 그런 용기 있는 결단을 했는데도 한·미 FTA가 저리 되니 그건 참….”

-한·미 FTA 자동차 부문 ‘재논의’와 관련해 우려의 목소리가 있다. 일부 외신에서는 이를 재협상(re-negotiation)으로 표현했다. 오보인가.

“한·미 FTA 재협상과 관련해선 별로 할 말이 없다. 미국이 아직 우리와 논의할 준비가 안 돼 있다. 실무선에서 그쪽의 요구사항을 전달받은 것도 없다.”

-지난달 한·미 정상회담에서 이명박 대통령의 발언은 어떻게 나온 것인가.

“들어보면 알겠지만 준비된 답변은 아니었다. 질문이 있어서 답변한 것이다. 유럽 자동차가 5만 대나 들어오는데 미국 차는 왜 못 들어오나. 뭐가 문제인지 한번 들어보자, 뭐 이런 것이었다.”

-미국은 아직 움직이지 않는데, 우리만 너무 신경 쓰는 것 아닌가.

“이런 상황에서 우리가 매달릴 필요는 없다. 다만, 의료개혁이 이제는 가시권에 들어간 상태다. 그게 끝나면 한·미 FTA는 도하개발어젠다(DDA)와 달리, 미국 업계의 광범위한 지지가 있으니 (미국이) 그쪽으로 관심을 돌리면 분명히 기회는 올 거다. 버락 오바마 대통령도 언제까지 꼭 하겠다고 시기는 꼭 집어서 말하진 않았지만 자기가 꼭 하겠다고 의지 표명을 했다. 재협상은 안 된다는 것은 분명하다. 미국 측에 이런 것을 가져오면 한번 해볼 게라든지, 저 사람들에 매달려서 나라도 쫓아가 해보겠다는 그런 말은 하고 싶지 않다.”

-미국이 내년 1월에 수정 제의할 것이란 보도가 있었는데.

“미국이 찬찬히 들여다봤더니 이런 게 이슈다 하고 갖고 오면 들어는 보겠다. 지금 추측 차원에서 말할 시기는 아니다. 저쪽이 꺼내면 이쪽도 불만사항을 꺼내자는 주장이 있는데, 그건 판도라의 상자를 여는 것이다. 그리 되면 부수고 새로 짓는 게 낫다. 이쪽 기둥 뽑아다 저쪽 옮기다가 집 무너진다.”

-최근 방한한 웬디 커틀러 USTR 대표보와는 무슨 얘기를 했나.

“웬디 커틀러도 전망을 똑 부러지게 말하기 어려운 상황이라고 하더라. 저쪽이 상황이 그렇다고 판단되는 이상 우선 시간을 좀 갖도록 해주는 게 좋고, 그 연장선에서 우리가 달라붙어 애걸복걸해야 할 일도 없다.”

-같은 논리로 한국이 먼저 국회에서 비준하는 방안이 도움 안 된다고 보는 것인가.

“우리 국회도 정치하는 분들이고 국가적인 체면이나 자존심 같은 것도 다 있는 것이고, 저쪽이 미동도 안 하는데 우리가 다 끝낸다고 하면 여러 가지 복잡한 생각을 할 수 있다. 저쪽이 움직인다고 하면 우리가 한두 발짝이라도 먼저 가면 저쪽을 분명히 촉진하는 효과가 있지만, 미동도 안 하는데 우리가 다 끝내고 기다리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그럼 지난번엔 정부가 왜 그랬느냐. 그때는 미동도 안 하는 상황은 아니었고 우리가 밀어주면 저쪽도 촉진이 되겠다고 판단한 것이다. 지금 상황은 저쪽이 외부에서 어떤 변수가 발생하든 그 분위기가 쉽게 바뀔 것 같지 않다. 미국이 자기 일부터 끝내고 정신을 차리는 그때까지 차분히 우리 시간을 갖는 게 좋겠다. 마침 EU·인도와 FTA가 돼 있기 때문에 이것부터 착착 예정대로 진행시키면 된다.”

김 본부장은 잘 알려진 대로 군더더기 없이 정제된 발언을 이어갔다. 그는 인터뷰 과정에서 다섯 차례에 걸쳐 비보도(off-the-record)를 요청했고, 본지는 이를 받아들였다. 그는 올해 가장 아쉬웠던 일로 협상이 타결된 지 2년 반이 넘었는데도 발효되지 못하고 있는 한·미 FTA를 꼽았다.

-외교통상부를 중심으로 ‘중장기 FTA 추진전략’을 만들고 있다. 2003년 당시 정부의 FTA 동시 다발 추진전략을 주내용으로 하는 FTA 로드맵이 수정되는 것인가.

“과거 FTA 로드맵이 국민에겐 동시 다발이란 메시지로 전달돼 있다. 내년 6월까지 좀 더 정교하게 새 전략을 만들어 발표할 생각이다. 6월에 발표하는 이유는 EU와 미국의 FTA 발효 시점이 그때쯤이면 손에 잡힐 것이기 때문이다. 두 FTA 발효 여부가 우리 경제의 대외여건을 계산하는 데 큰 변수다. 발효 여부에 따라 우리가 취할 수 있는 전략이 많이 달라질 수 있다.”

-한·일, 한·중, 한·중·일 FTA는 어 떤가.

“일본과 FTA는 어떤 형태의 협상이든 지금의 교역구조를 봤을 때 내줘야 할 부분을 충분히 보상받지 못할 것이라는 공감대가 업계에 형성돼 있다. 단기적으로 ‘이익의 균형’을 찾기 쉽지 않다는 지적이 많다. 여건이 바뀔 때까지 두고 봐야 한다. 중국과 FTA도 시간이 필요하지만. 산·관·학 공동연구가 내년 중 마무리되면 정부 간 협상을 시작할지 논의할 수 있는 분위기는 될 것이다. 그게 바로 협상을 시작한다는 뜻은 아니다. ”

-협상 전문가들은 ‘뒤에서 쏘는 총알이 더 무섭다’는 말을 곧잘 하곤 한다.

“그렇다. 웬디도 비슷한 얘기를 하더라. 정치권이 폴리티션(politician), 즉 지역구 대표로서가 아니라 국가 전체를 보는 스테이츠맨(statesman)의 시각을 가져줬으면 한다. 통상은 국가 전체의 스테이츠맨 시각으로 봐야 한다. 스테이츠맨은 국가 전체를 관리하는 사람으로서 보다 넓은 시각을 가진 지도자라고 할 수 있다. 국회의원이 많지만 그런 안목을 가진 분들이 결국은 진정한 지도자가 되는 것 아니겠나.”

-통상 전문가를 꿈꾸는 젊은이들에게 조언을 해준다면. 어떤 자질이 가장 중요한가.

“요즘 여성분들이 통상에 관심이 많다. 우리 신입 직원 중에 여성도 많아졌다. USTR 가보면 거긴 여인 천국이다. 아마 통상이 세밀하고 디테일한 부분이 많기 때문에 여성에게 더 맞는 건지도 모르겠다. 국가와 국가 간의 통상 협상을 할 때 협상자의 자격 요건 중에 가장 중요한 것은 상대편과 소통할 수 있는 능력이다. 굳이 언어 능력이 아니더라도 잘 알아듣고 자기 말을 설득력 있게 전달하는 게 중요하다. 이는 표정 관리부터 제스처, 사교적인 태도 등 여러 가지를 종합적으로 상대편과 소통하는 게 중요하다.”

-협상가가 사교적이면 도움이 되나.

“그렇다.”

-전·현직 통상교섭본부장 모두 부드러운 타입으로 보이진 않는데.

“나를 아는 사람은 나보고 다 사교적이라고 한다. 딱 보면 인상이 눈이 좀 째져서 그렇지.(웃음)”

고현곤 경제정책데스크, 서경호 기자, 사진=박종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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