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윈집' 개발 PC천재의 황폐한 죽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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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9면

지난 4월 14일 미국 중서부 위스콘신주 밀워키시의 한 호텔방에서 37세의 남자가 시체로 발견됐다. 그의 왼손엔 빈 위스키병이 쥐어져 있었다. 쓰러지면서 어디엔가 부딪힌 듯 머리 한쪽은 움푹 팬 채였다.

부검의들은 그의 간이 알콜 중독으로 샛노랗게 변해 있고 췌장에선 출혈이 발생한 걸 발견했다. 전형적인 알콜 중독자의 죽음이었다.

그러나 그의 신원을 확인한 경찰은 경악했다. 그가 바로 컴퓨터 파일을 압축하는 집(zip)기술을 최초로 개발했던 컴퓨터 천재 필립 카츠였기 때문이다.

미국의 시카코 트리뷴지는 21일 컴퓨터통신의 신기원을 열었고 졸지에 백만장자가 됐던 카츠의 불운했던 삶을 자세히 보도했다.

어릴 적부터 수학에 천부적인 재능을 보였던 카츠는 23세이던 1986년 당시만 해도 획기적이던 집 기술을 개발했다. 파일을 압축함으로써 전송과 저장을 훨씬 간편하게 할 수 있음을 발견해 낸 것이다.

카츠는 이 기술을 인터넷에 올리고 PK웨어라는 회사를 차려 금방 백만장자가 됐다.

PK웨어사의 PKZip은 지핑, 언지핑이라는 신조어를 만들어 내며 시장을 석권했다. 마이크로소프트웨어.IBM 같은 회사를 고객으로 확보했다. 이제는 컴퓨터 세계에서 일반화된 윈집(WINZip)의 모태가 된 게 바로 그의 압축기술이었다.

그러나 그가 졸지에 떼부자가 되고 유명해질수록 그의 삶은 점차 황폐해져 갔다는 게 주변사람들의 증언이다.

그는 원래 내성적인 성격이었다. 그는 회의나 강연회 같은 데 절대 나서지 않았고 이웃과도 어울리지 않았다. 컴퓨터 업계에서 그를 자주 만나는 사람들조차 바로 그가 그 유명한 압축기술의 창시자란 걸 대부분 모를 정도였다.

하지만 엄청난 부자가 된 카츠는 방탕한 생활을 시작했다. 스트립쇼 클럽을 전전하고 고급 콘도도 구입했다.

그러면서 그는 알콜 중독자가 돼갔다. 숨졌을 당시 그의 가방 안에는 갖가지 성(性)기구들이 가득 담겨 있었다. 술과 여자, 낭비와 방탕으로 그는 주체할 수 없었던 부(富)와 자신의 건강을 동시에 탕진하며 살았던 것이다.

20대 초반의 이 백만장자가 30대 후반에 숨졌을 때 그는 거의 파산상태였다고 시카코 트리뷴지는 보도했다.

카츠의 부동산이 얼마나 남았는지는 모르지만 동산은 1만달러에 불과했다는 것이다. 그의 시체와 함께 3천달러를 빚진 마스터카드, 50달러짜리 술을 산 영수증, 음주운전 딱지와 호텔 숙박료 청구서가 함께 발견됐다.

그의 어머니는 경찰에서 "5년 전 만난 뒤 한번도 아들을 보지 못했다" 고 말했다. 카츠의 친구들은 "그의 천재적 재능과 인생의 행복은 비례하지 못했다" 고 안타까워했다.

조강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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