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틴 정치실험…러 정국 회오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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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1면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신임 대통령이 취임 2주도 못돼 정치판을 뒤흔들고 있다. 대선 공약이기도 했던 '강한 러시아의 부활' 을 위한 실천 조치로서 대통령 권한 강화 및 지방 정부의 권한 축소 등 정치 실험을 꾀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푸틴이 20일 최종 발표한 내각 명단은 그도 보리스 옐친 전 대통령과 마찬가지로 크렘린내 실세 관료들과 올리가르키(과두산업재벌)의 그늘에서 벗어나지 못했음을 보여준다고 현지 전문가들은 평가했다.

◇ 국가구조 개편〓푸틴은 지난 13일 현재 89개의 주.자치주.자치공화국 등으로 구성돼 있는 러시아 전역을 7개의 연방지역으로 재편했다.

또 이 지역들의 총괄 책임자를 대통령이 직접 임명, 국민이 직접 선출한 지방 지도자들의 위에 앉히는 초헌법적 조치를 단행했다.

푸틴이 18일 임명한 7개 연방지역의 책임자 대부분이 군과 정보기관 출신이다. 빅토르 체르케소프 연방보안국(FSB)차장, 전 국가보안위원회(KGB)요원인 게오르기 풀타프첸코, 빅토르 카잔체르 전 카프카스 군관구 사령관 등이 각각 북서(중심지 상트페테르부르크).중앙(모스크바).북카프카스(로스토프 나 도누)지구의 대표가 됐다.

여기에 푸틴은 내무군의 소속을 내무부에서 대통령 직속으로 바꿔 필요할 경우 모스크바를 비롯한 전국 주요 도시에 가장 가까이 배치돼 있는 내무군을 즉각 동원할 수 있도록 친위조직화했다.

◇ 대통령 권한 강화〓푸틴은 현재 지방의회 의장과 행정수반직을 겸하고 있는 지방 지도자들에게 둘 중 하나만을 선택하도록 했다.

또 지방의 조례나 자치법안 등이 연방법에 위배될 경우 선출직인 해당 지방 지도자들을 대통령 권한으로 해임하도록 추진하고 있다.

특히 지방 지도자로 선출되면 자동적으로 상원의원이 되는 제도를 바꿔 상원은 지방 지도자의 대표들로 구성하도록 하는 법안을 제출했다. 지방 지도자들의 면책특권 박탈도 추진 중이다.

◇ 적극적인 공권력 행사〓최근 푸틴에 대해 비판적인 유리 루슈코프 모스크바 시장측 언론그룹인 미디어-모스트사에 중무장한 세무경찰대가 들이닥쳐 압수수색을 벌였다.

역시 루슈코프계 언론사인 TV-첸트르에 대해서도 법규 위반을 이유로 면허취소와 면허권을 제3자에게 입찰하겠다고 협박하고 있다.

인권단체 등은 이러한 조치가 언론에 재갈을 물리려는 독재 정책이라며 격렬히 반발하고 있지만 대다수 언론들은 자기들에게까지 불똥이 튈까봐 정부의 눈치만 살피고 있다.

◇ 신내각 구성〓미하일 카시야노프의 총리 등용과 니콜라이 악쇼넨코 철도부 장관의 건재는 옐친 패밀리의 수장인 알렉산드르 볼로쉰 크렘린 행정실장과 대표적 올리가르키인 보리스 베레조프스키의 영향력이 여전히 막강함을 보여준다.

푸틴은 카시야노프 등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게르만 그레프 경제통상장관 등 자파세력 몇몇만을 내각에 끌어들였을 뿐이다.

볼로쉰과 베레조프스키는 새 검찰총장 인선과정에서도 푸틴이 의회에 관계자를 통해 구두로 통보까지 한 드미트리 코작을 마지막 순간에 블라디미르 우스티노프로 바꾸게 만들었다.

이에 따라 새로운 내각은 국가기강확립과 부패척결, 행정력 강화를 추진하겠지만 결국은 옐친 정권 말기처럼 크렘린과 친한 올리가르키들의 이익을 무시하지는 못할 것이라고 전문가들은 전망하고 있다.

모스크바〓김석환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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