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옴부즈맨 칼럼] 20돌 맞은 '5·18' 대접 소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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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5.18 광주민주화운동이 스무돌을 맞았다. 역사는 경험의 보고이며, 오늘 우리의 삶을 비추는 거울이다.

'죽음을 넘어 시대의 어둠을 넘어' , 민주공화국 한국의 '정치적 영혼' 을 환히 빛낸, 저 위대한 1980년 5월 항쟁이라는 역사적 거울을 통해 우리는 무엇을 배워야 할 것인가.

아마 우리는 5월 항쟁의 역사적 힘과 기억의 효과 없이는 6월의 평화적 항쟁을 상상하기 어려울 것이다.

6월 민주 대항쟁을 분수령으로 정치적 자유화가 이뤄진 일, 5.18 특별법이 제정되고, 전두환.노태우 양씨를 비롯한 관련자들이 재판정에 서고 12.12와 5.18이 군사 반란과 내란으로 판결받은 일, 그리고 평화적 정권 교체가 이뤄진 일 등에서, 우리는 80년 5월의 혼이 살아 숨쉬고 있음을 느낀다.

그러나 다른 한편 명백한 역사적 진실로 드러난 미국의 패권적 냉전 신자유주의 정권의 신군부 지원 사실에 대해 책임을 묻고 사죄를 받아내지 못한 일, 가장 초보적인 발포 책임자조차 찾아내지 못한 일, 5.18의 정신이 전국화하지 못하고 지역패권주의의 족쇄에 갇힌 일, 민주화가 구체제의 유제를 발본적으로 청산하고 우리 삶의 모든 영역으로 확대 심화하는 진보적 경로가 아니라 부정적 유제가 뿌리깊게 존속된 채 국민 대중에 인고(忍苦)를 강요하는 보수적 경로를 취하고 있는 일, 김대중 정부가 全.盧 양씨와 시대역행적 유착을 도모하고 있는 일, 그리고 경제 위기를 맞아 미국 패권주의에 재종속되고, 총체적 부패 천민 공화국의 유제가 여전한 채 '20대 80 사회' 화하는 종속적.크로니(crony)신자유주의 체제가 형성되고 있는 일 등에서 우리는 80년 5월의 혼은 어둠 속에 묻혔음을 느낀다.

우리는 줄지어 일어나는 현안들에서, 대외적으로 미국의 패권적 개입에 대해 자주적 자세를 확립하고 대내적으로 실질적 민주화를 실현하는 과제와 일상적으로 마주치고 있다.

매향리 사건의 진상을 조사하고 불평등한 한.미행정협정(SOFA)을 개정하는 일, 노근리 양민 학살사건의 진상을 조사하는 일, 베트남 참전 한국군 고엽제 피해 보상을 정부 차원에서 제기하는 일, 그리고 경부 고속 철도 등 대형 국책사업의 부실 비리를 조사하는 일, 왕조적 재벌체제를 개혁하고 변칙 상속을 막는 근본 대책을 수립하는 일, 경제협력개발기구 국가 중 최장 노동시간 국가라는 오명을 벗고 노동시간을 단축하는 일 등이 그것이다.

필자가 중앙일보에서 부족하다고 느끼는 점 중의 한 가지는 역사적 안목과 깊이다. 일류 신문이 마땅히 갖춰야 할, 어떤 역사적 무게감이 잘 느껴지지 않는다.

신문의 역사적 좌표축 설정이 미약하다고 해도 좋다. 5.18 스무돌 관련 기사에서도 그러한 점을 느낀다.

5.18이 오늘의 우리에게 어떤 과제를 던져주고 있는지를 살펴보는 적극적 관점이 미약했다고 본다. 그리고 최소한 5.18 하루만은 좀더 많은 기사를 할애해야 하지 않았을까 싶다.

매향리 사건과 SOFA개정 문제, 노근리 학살 문제, 고엽제 피해보상 문제 등에 대해서도 좀더 비중있게 보도했어야 했다.

무기 도입 비리에 대해 4회나 특집기사를 편성한 것은, 이를 철저히 파헤치려 한 점에서 보면 가점을 줄 수 있다.

그렇지만 이는 다른 이슈를 상대적으로 소홀히 다루게 되는 대가를 치른다는 점에서 보면 감점 요인이 된다. 재벌개혁.노동시간 단축에 더 많은 지면을 할애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서울고법이 삼성SDS 신주인수권 행사 유보 가처분 결정을 내린 것은, 비상장기업 주식을 이용한 재벌의 변칙 상속에 제동을 걸었다는 점에서 의미가 매우 크다. 그렇지만 이 사건을 작은 비중으로, 그리고 다분히 양비론적으로 다루고 있다.

주 5일 노동시간제의 도입은 우리가 '생활 빈국' 상황에서 탈피해 삶의 질을 선진화하는 데 필수적 관문이고, 노동계에만 국한한 이슈가 아니라 전시민적-국민적 이슈인데, 중앙일보가 이를 소홀히 다루는 것은 5월의 정신을 오늘에 되살린다는 견지와도, 개혁을 선도하는 일류 신문의 책무라는 견지와도 맞지 않는 일일 것이다.

5월을 맞아 개혁.민주주의.평화의 정신으로 거듭나는 중앙일보를 기대한다.

이병천 <강원대 교수.경제무역학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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