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후진타오 시대] 1. 장쩌민 왜 물러나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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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쩌민의 중앙군사위 주석 사임 배경은 뭘까. 한마디로 '명분론'에서 밀린 게 가장 큰 요인으로 꼽힌다. 또 측근들의 비리가 터지며 여론이 나빠졌다. 따라서 뒷일에 대한 '안전 보장'을 받자 미련 없이 자리를 떠나게 된 것으로 분석된다.

◆ 명분에서 밀려=장이 당서기 국가주석을 넘기고도 중앙군사위 주석을 유지한 것은 두 가지 이유에서였다. 첫째는 대만 문제였다. 이는 조국 통일의 대업으로 극히 민감한 사항이라는 게 장의 주장이었다. 둘째는 정국 안정의 필요성에서였다. 장은 후진타오의 제4세대 지도부가 자리를 잡을 때까지 뒤에서 돌봐주는 것이 좋다고 고집했다. 이 같은 장의 견해에 당시 누구도 반기를 들지 못했다. 아직 장의 세력이 강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난해 봄 중국을 강타한 중증 급성호흡기증후군(SARS.사스) 폭발이 장의 쇠퇴와 후의 부상을 가름하는 주요 계기가 됐다. 후가 베이징에서 사스 퇴치를 진두지휘한 반면 장은 사스 안심 지역인 상하이로 피신했다. 뒤에서 돌봐준다는 명분을 잃은 것이다. 또 올해 상반기 대만 총통 선거에서 천수이볜(陳水扁)이 재선에 성공한 것도 장의 입지를 크게 약화시켰다. 대만 분리 독립주의자로 의심받는 천을 패배시키기 위한 장의 여러 물밑 공작이 모두 수포로 돌아갔기 때문이다. 장이 당내 공개 석상에서 밝혔던 '대만 문제와 정국 안정'의 이유 두 가지 모두가 실패한 것이다. 여기에 1997년의 제15대 당 대회에서 권력 서열 3위의 차오스(喬石)를 실각시킬 때의 명분이었던 '70세 이상의 당 고위직 불허' 정책도 장에겐 부메랑이 돼 돌아왔다. 26년생인 장은 올해 만78세로 70을 훨씬 넘긴 80을 눈 앞에 두고 있다. 빼어난 능력이 있다고 해도 일선에서 일하기엔 무리라는 비난이 따가웠다.

◆ 악화하는 여론=잇따른 측근들의 비리가 장에겐 큰 부담이 됐다. 가장 큰 사건은 지난해 여름 터진 상하이 부동산 재벌 저우정이(周正毅)의 금융 비리. 이 사건은 사실 저우가 치부하는 과정에 관련된 것으로 알려진 황쥐(黃菊)를 겨냥했다는 게 정설이다. 당시 상하이(上海) 당서기를 역임했던 黃은 현재 서열 5위의 정치국 상무위원인 거물이다. 황이 낙마한다는 것은 곧 장의 권력 기반인 상하이방(上海幇)의 몰락을 예고하는 것이다. 특히 장의 간담을 서늘하게 한 것은 장 측 인사들의 각종 비리에 대한 소식을 주룽지(朱鎔基) 전 총리 등 내부 사정에 아주 밝은 고위 인사가 제공하는 것으로 알려졌기 때문이다. 장의 측근 보호가 이미 한계에 이르렀다는 말이다.

◆ 보장받은 뒷일=이 같은 압력에 밀리던 장은 후진타오에게서 뒷일을 보장받게 되자 미련없이 중앙군사위 주석직 사임을 선택했다. 즉 오른팔인 쩡칭훙(曾慶紅) 국가 부주석이 후진타오를 지지하는 대가로 제4세대 지도부의 계속적인 '존경'을 확보한 것이다. 또 장남인 장몐헝(江綿恒)과 차남 장몐캉(江綿康)의 사업 문제도 보장을 받았다. 중국 과학원 부원장으로 중국 정보기술(IT) 사업을 주도하고 있는 장몐헝에 이어 최근엔 장몐캉이 중국의 거대 국유기업인 중신(中信)그룹의 회장에 내정됐다. 이는 장의 두 아들 모두 후진타오에게서 사업상의 안전을 약속받은 것으로 평가된다. 이는 덩샤오핑의 차남 덩즈팡(鄧質方)이 사업하다 비리에 연루돼 구속을 피하는 선에서 은퇴한 것과는 대조적이다.

베이징=유광종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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