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자의 길 접고 전업가수 된 뒤 첫 음반 낸 ‘루시드 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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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시드 폴은 “내가 불안할 때 브라질 뮤지션 카톨라의 음악을 들으며 위안을 얻은 것처럼,나의 노래도 누군가에게 위로가 될 수 있길 기대한다”고 말했다. [안테나뮤직 제공]

가수 루시드 폴(조윤석·34)이 올해 초 학업을 중단하고 음악에 전념하겠다고 발표했을 때, 주위의 반응은 “너 도대체 왜 그러니”였다. 스위스 로잔공대에서 쓴 박사논문이 세계적 화학잡지 미국 화학저널(JACS), 네이처 케미스트리지(誌)에 실리는 등, 7년여의 유학생활 동안 거둔 학문적 성과가 아깝다는 게 주된 이유였다.

이 밖에도 반대 이유는 다양했다. “너의 음악이 그렇게 잘 팔리는 건 아니잖니”, “지금처럼 멀리서 음악을 하는 것이 더 폼 난다” 등등. 하지만 본인에게는 “직감처럼 다가온 확신”이 있었다. “작년 9월 이탈리아 토리노에서 열린 유럽 화학회에 참가했을 때였어요. 내로라하는 학자들이 다 모였는데, 왠지 강연을 들으러 가고 싶지 않은 거예요. 하루 종일 시내를 쏘다니며 ‘내가 왜 이럴까’를 생각했죠. 오랜 외국생활로 인한 내상(內傷), 동물실험을 하며 느꼈던 정서적 불편 등이 내 안에 가득 쌓였음을 알게 됐고, 이제 그만해도 되겠다는 결론을 내렸죠.”

그는 과학자로서의 경력을 단숨에 포기하고 올 2월 귀국했다. 그리고 봄부터 음악에 매달린 끝에 최근 네 번째 정규 음반 ‘레 미제라블(Les Miserable)’을 내놨다. 2007년 ‘국경의 밤’ 이후 2년 만이다. 빅토르 위고의 동명 소설에서 앨범 타이틀과 컨셉트를 따 왔다.

“스위스에서 있을 때, ‘레 미제라블’을 처음 읽었어요. ‘비참한 사람들’이라는 원제처럼, 주인공 장발장을 비롯한 모든 등장인물이 너무 가엾더라고요. 인간이면 누구도 피할 수 없는 근본적인 외로움, 나이 드는 두려움, 육체의 고통 등을 디테일하게 접근해보고 싶었습니다.”

이번 음악 역시, 그의 전작처럼 따뜻하면서도 쓸쓸하다. 마음 속 골방을 유랑하던 그의 노래는, 이제 살짝 문을 열고 나와 주변을 다독인다. 유학시절 값이 싸 즐겨먹었던 고등어를 떠올리며 쓴 타이틀곡 ‘고등어’에서 그는 고등어의 입장이 돼 “가난한 그대, 나를 골라줘서 고마워요”라고 읊조린다. “나는 갈 곳이 없었네 그래서 오르고 또 올랐네”(평범한 사람), “사랑한다는 말, 누군가에겐 너무나도 눈물 나게 아름답다는 말”(외톨이) 등 한 편의 시(詩) 같은 가사는 여전하다. 대신 “나를 둘러싼. 나를 제외한, 모든 사람들은 즐겁다”(2집 사람들은 즐겁다)라던 처연함은 조금 진정됐다. “슬픔을 팔아먹지 말자”는 생각으로 음반작업을 시작했고, “편곡을 통해 사운드를 풍성하게 만들면서 지나치게 감상적인 접근을 배제하려 한” 결과다.

‘전업가수’를 선언하고 처음 만든 음반인 만큼 부담도 크지만, “한국에 이런 음악인이 있다니 기쁘다”고 평한 가수 유희열 등 주변의 호응에 힘을 얻는다. 6년째 해온 크리스마스 콘서트 준비로도 바쁘다. 올해는 24~26일 서울 연세대 백주년 기념관에서 열릴 예정. “캐럴이나 연인을 위한 이벤트, 그런 건 절대 없는” 공연으로 화려하게(?) 꾸밀 생각이란다.

이영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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