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8기 왕위전 도전기 5국' 꼬리 잘린 이세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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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0면

제38기 왕위전 도전기 5국
[제8보 (119~134)]
黑.이세돌 9단 白.이창호 9단

이세돌9단의 두 눈이 이창호9단이 던진 백△를 바라본다. 이글거리는 눈빛 사이로 분노가 배어나온다. 상대는 멀찍이 떨어져서 양자택일을 강요하고 있다. 대마를 죽일 것인가, 아니면 이곳만 떼어주고 목숨을 보전할 것인가.

힘들게 살려낸 좌상귀를 다시 죽이려니 고통스럽다. 무려 30집. 하지만 이곳을 내주지 않고서는 새까맣게 깔린 백의 포위망을 뚫기란 불가능하다. 사실 이 정도만 요구하는 것도 다행인지 모른다. 이세돌이 지닌 절륜의 무공과 힘이 아니었다면 백의 대마는 벌써 북망산으로 갔을 것이다.

119로 들여다보고 123 끊었다. 그리고 125의 축으로 한점을 잡았다. 좋은 수순. 비록 좌상을 내줬지만 한쪽 대마는 이것으로 사지에서 벗어났다.

그러나 이창호는 여전히 조심스럽다. 좌상은 그냥 둔 채 일단 126으로 내쪽을 보강하고 있다. 이창호는 결코 상처를 입은 사자와 정면으로 맞서지 않으려 한다. 그 침착하고도 느릿한 움직임에 이세돌은 질린 듯 미소를 흘리고 있다. 정면으로 공격해 온다면 옥쇄든 뭐든 사생결단을 낼 수 있을 텐데 꼭 이쪽에 선택의 여유를 주어 생의 미련을 갖게 한다.

127,129로 대마부터 살렸다. 130으로 귀는 사망했다. 그러나 이 정도 피를 흘리고 흑의 양 대마가 백의 포위망에서 다 벗어난 것이라면 승부는 아직 희망이 있다(귀는 넉점을 따내도 '참고도'백1의 치중수로 살지 못한다).

백의 끝없는 추격에 진저리를 치던 이세돌이 131,133으로 문득 역습의 칼을 뽑아든다. 그런데 이창호의 십면매복은 이로써 다 격퇴된 것일까.

박치문 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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