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사람] 무형문화재 지정받은 박찬범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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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1면

"서민들의 애환이 서린 풀피리의 명맥은 이어져야 합니다."

'풀피리 도사' 로 불리는 목수 출신의 박찬범(朴燦凡.52.서울 광진구 노유동)씨.

그는 최근 서울시가 풀피리(草笛)를 무형문화재로 지정하자 민초(民草)들의 사랑을 받아온 악기가 인정을 받게 됐다며 기쁨을 감추지 못했다.

"풀잎이나 나뭇잎의 가장자리를 살짝 접어서 부는 풀피리는 조선시대 궁중음악의 이론서인 악학궤범에도 소개될 정도로 서민들에게 친근한 향악기(鄕樂器)의 하나입니다. 어렵고 굶주렸던 보릿고개 시절의 한(恨)을 상징하기도 하고요. "

朴씨가 풀피리를 불기 시작한 것은 8살부터다. 나무꾼이었던 아버지로부터 피리를 배운 그는 15살 때 고향인 전남 영암에서 상경, 목수일을 하면서 틈만 나면 인부들에게 구수한 옛 가락을 들려줬다.

동백.유자.귤잎은 물론 상춧잎으로도 '강산풍월' 이나 '시나위' 등 웬만한 옛가락을 모두 연주할 정도로 실력을 갈고 닦았다.

1997년부터 朴씨의 풀피리 실력이 알려지면서 동네 노인잔치나 구청 문화제 등에 단골로 초청돼 본격적인 연주활동에 나섰다.

이듬해 9월에는 서울 정동극장에서 사상 처음으로 풀피리 독주회를, 지난해에는 국립국악관현악단과 협연까지 했다.

국악계에 그의 실력이 알려지자 처음에는 "국악을 전공하지 않았다" 는 이유로 朴씨에게 냉소적이었던 서울시 문화재위원들도 풀피리의 문화.역사적 가치를 인정하게 됐다.

무형문화재 기능보유자로 지정돼 월 80만원의 지원금을 받는 朴씨는 "풀피리를 제대로 연주할 줄 아는 국악인들이 거의 없다는 것이 가장 안타깝다" 고 했다.

朴씨는 앞으로 시민들에게 풀피리 연주법을 가르치는 등 후학 양성에 여생을 바치겠다고 말했다.

양영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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