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근리 증언' 신빙성 논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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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9면

한국전쟁 당시 미군의 노근리 양민학살 사건에 대해 한국과 미국 당국이 조사를 하고 있는 가운데 사건을 밝힌 일부 참전미군의 증언을 둘러싸고 신빙성 논란이 일고 있다.

최근 '스타스 앤드 스트라이프스(The Stars and Stripes-미국 국기 성조기의 영문이름)'란 격주간지는 비밀해제된 육군 전쟁일지 등의 기록을 조사한 결과 AP통신 기사 중 사실과 다른 중요한 부분을 발견했다고 보도했다.

이 격주간지는 주로 재향군인 독자들을 상대로 민간인이 발간하는 것이며 미 국방부가 해외주둔 미군용으로 제작하는 '성조기' 지(紙)와는 다른 매체다.

이 잡지는 우선 학살 당사자로 거론되고 있는 부대는 제7기병연대 2대대 H중대라고 지목하면서 연대 부대일지에 따르면 2대대가 노근리에 주둔한 것은 AP통신이 보도한 것처럼 3일 동안이 아니라 16~20시간뿐이었다고 지적했다.

잡지는 AP통신을 비롯한 언론기관에 학살사건의 진상을 자세히 설명한 데일리 상병(당시 계급)은 2대대가 아니라 수마일 떨어진 사단정비부대에 있었다고 보도했다.

또 다른 핵심 증인인 플린트 일병은 사건 하루 전날 부상으로 후송됐다고 잡지는 주장했다.

학살 특종보도로 퓰리처상을 수상한 AP통신은 11일 오후 성명을 발표, "데일리는 AP기자에게 자신이 H중대에 복무한 사실을 뒷받침하는 것이라고 주장하는 서류들을 보여주었다" 고 반박했다.

문제가 되고 있는 데일리 상병에 대해서는 진상조사를 진행 중인 미 육군도 의구심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미 육군측은 이달 초 한국의 노근리 사건 자문위원단이 워싱턴을 방문했을 때 "참전미군들의 증언 중에는 데일리라는 존재를 확인할 수 없는 병사의 일부 진술이 있다" 고 밝혔다는 것이다.

미 육군측이 "어느 언론에서 데일리의 행적이 의심스러워 취재하고 있는 것 같다" 는 점도 알려주었다고 한국측 관계자는 전했다.

주미 한국대사관 관계자는 "잡지의 보도에 대해 미 육군측은 사건에 대한 진상조사가 진행 중이므로 어떠한 것도 확인해 줄 수 없다는 입장" 이라고 소개했다.

관계자는 "잡지의 보도로 증인에 관한 논란이 제기되는 것은 사실이지만 미군에 의한 한국인 살해라는 사실 자체가 없어지는 것은 아니다" 고 설명했다.

그는 "현재 미국은 정말 어떤 상황에서 어떤 동기에 의해 그런 행위가 저질러졌는지를 정확히 조사해 사건의 성격을 규정하겠다는 방침" 이라고 덧붙였다.

워싱턴〓김진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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