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다자외교무대 본격 데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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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북한이 다자(多者)외교무대에 본격 데뷔하려 한다."

북한의 아세안지역 안보포럼(ARF)가입신청에 대한 우리 정부관계자들의 분석이다. 북한의 대외관계는 그동안 세개의 흐름에서 움직여왔다. 하나는 남북관계의 재설정이다. 다른 하나는 한반도 주변강국인 미국과 일본의 관계개선이다. 셋째가 호주.이탈리아.브루나이 등과의 수교 및 외교관계 재개 등이다.

그런 흐름은 양자관계의 틀속에서 이뤄져왔다. 이번에 ARF가입 신청을 함으로써 다자외교무대까지 진출하려는 모양새를 갖췄다. 이는 북한의 외교전략과 패턴이 바뀔 것임도 예고해주고 있다.

북한의 다자회의 참여는 1970년대 '비동맹회의' 와 90년대의 '유엔' 가입에 이어 세번째다.

외교소식통은 "북한이 그간 ARF 가입신청을 안했던 것은 '아웅산 테러' 의 피해국인 미얀마의 반대가 있었지만, 개방에 대한 준비가 덜 됐기 때문" 이라고 분석했다.

북한의 ARF 가입신청은 6~7월 필리핀과 수교를 한 뒤로 전망됐다. 그런데 일정을 앞당긴 것은 "6월 남북정상회담을 앞두고 개방에 대한 내부입장을 어느 정도 정리한 것으로 볼 수 있다" 고 이 소식통은 지적했다.

정부당국자는 "북한이 미.일과 관계개선을 위해서도 국제협의체에 참여하는 태도를 보여주는 게 도움이 된다는 쪽으로 선회한 것 같다" 고 분석했다.

북한은 ARF에 이어 아시아개발은행.세계은행.아태경제협력체 등 경제관련 다자모임의 가입도 추진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ARF에 가입한 국가는 1년간 전문가회의 등을 거친 뒤에야 외무장관회의에 참석하는 게 관례지만, 북한 백남순(白南淳)외무상은 7월 방콕의 외무장관회의부터 바로 참석할 가능성이 큰 것으로 전해진다.

이는 아태지역 안보에 위협적 요소로 등장했던 북한을 조속히 안보협의의 테이블로 끌어들여야 한다는 한국.태국.호주 등 회원국의 입장 때문으로 알려졌다.

북한은 ARF 가입으로 안보문제에 제 목소리를 낼 수 있게 된 동시에 핵.미사일에 대한 회원국들의 신뢰를 구축해야 하는 의무도 지니게 됐다.

그간 ARF가 성명을 통해 밝힌 대량파괴무기(WMD)에 대한 우려를 불식할 책임을 지게 된 것이다.

외교부 관계자는 "북한이 안보문제 해결에 적극 협력할 것인지는 지켜봐야 할 것 같다" 고 전망했다.

이철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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